그 여자 / 김명인
그 여자 시장통 한 모퉁이에서 채소를 판다
아무려면 철따라 바뀌는 풀들 자라는 땅 이름
훤히 꿰고나 있는 듯,
그녀가 호명하는 무며 배추, 쑥갓 미나리 상추
함지에 담긴 시금치는 더 먼 곳에서 온 것이란다
종일 먼지를 뒤집어써야 하는 한 평 공터가
자식 셋 탈없이 키워낸 실한 모포였음을
그 여자 갈수록 대견해한다
그녀의 채소들은 시멘트 바닥에도 뿌리내린다
날마다 그만큼씩 잘라내어도
이튿날이면 어김없이 어제만큼 쑥쑥 자라 있다
다 아는 비밀이다, 그 여자 채소 위에 몰래 뿌리는 것은
남들의 시선에도 개의찮는 사랑이라는 것을,
건너편 생선장수와 잠깐씩
눈웃음 친다 해도
그 또한 홀몸인데 무슨 상관이람,
몸이 불어나 허릿단 더 늘인 것도 소용없이
터진 몸빼 깃 사이로 엿보이는 배춧빛 그녀의 살결,
나이보다 그 여자 훨씬 싱싱하다
- 김명인,『바닷가의 장례』(문학과지성사,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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