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꽃잎 - 조용미
높은 곳에 서 있으면
바람의 힘을 빌려 몸을 날리는 꽃잎처럼
뛰어내리고 싶었다
허공으로 한 발짝씩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는
봄 저물녘의 흰 꽃잎들
삶이 곧 치욕이라는 걸,
어떤 간절함도
이 치욕을 치유해주지 못한다는 걸
함석지붕에 떨어지는 소나기처럼,
붉은 땅 위로 내리꽂히는 장대비처럼,
어둑한 겨울숲에서 혼자 계곡으로 굴러 떨어지는
동백의 모가지처럼
높은 곳에 서 있으면
발 아래 까마득한 것들 다 공중으로
불러들이고 싶다
역류하는 것들의 힘으로
떨어지는 나는 폭발물이다
시집 『나의 별서에 핀 앵두나무는』(문학과 지성사, 2007)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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