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편의 詩

태풍이 지나간 저녁 들판에서 / 신경림

뚜르(Tours) 2023. 8. 12. 08:14

 

 

태풍이 지나간 저녁 들판에서  / 신경림

 

사마귀와 메뚜기가 물고 뜯고 싸우고 있다

방아깨비와 찌르레기가 여름내 가으내

내 잘났다 네 잘났다 다투고 있다

뉘 알았으랴 그때

하늘과 땅을 휩쓰는 비와 바람이 몰아쳐

사흘 밤 사흘 낮을 불다 가리라고

이제 들판에는 그것들

부러진 날갯죽지만이 흩어져 있다

토막난 다리와 몸통만이 남아 있다

태풍이 지나간 저녁 들판에 서보아라

누가 감히 장담하랴

사람의 일 또한 이와 같지 않으리라고

- 신경림,『쓰러진 자의 꿈』(창작과비평사,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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