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편의 詩

작은 완성을 위한 고백 / 이면우

뚜르(Tours) 2023. 8. 13. 07:58

 

 

작은 완성을 위한 고백  / 이면우



술, 담배를 끊고 세상이 확 넓어졌다
그만큼 내가 작아진 게다

다른 세상과 통하는 쪽문을 닫고
눈에 띄게 하루가 길어졌다
이게 바로 고독의 힘일 게다

함께 껄껄대던 날들도 좋았다
그 때는 섞이지 못하면 뒤꼭지가 가려웠다
그러니 애초에 나는
훌륭한 사람으로 글러먹은 거다

생활이 단순해지니 슬픔이 찾아왔다
내 어깨를 툭 치고 빙긋이 웃는다
그렇다 슬픔의 힘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한다
이제는 내가 꼭 해야 할 일만을 하기로 했다

노동과 목욕, 가끔 설겆이, 우는 애 얼르기,
좋은 책 쓰기, 쓰레기 적게 만들기, 사는 속도 줄이기, 작은 적선,
지금 나는 유산상속을 받은 듯 장래가 넉넉하다

그래서 나는 점점 작아져도 괜찮다
여름 황혼 하루살이보다 더 작아져도 괜찮다
그리되면 이 작은 에너지로도
언젠가 우주의 중심에 가 닿을 수 있지 않겠는가.

- 이면우,『저 석양』(호서문화사, 1991)

'이 한 편의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광복절 아침에 /未松 오보영  (0) 2023.08.15
무릎의 문양 - 김경주  (0) 2023.08.14
태풍이 지나간 저녁 들판에서 / 신경림  (0) 2023.08.12
맨발- 문태준  (0) 2023.08.11
친구야 말복이네 /김덕성  (0) 2023.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