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편의 詩

말썽쟁이 울 엄마 /고진하

뚜르(Tours) 2023. 9. 2. 06:23

 

말썽쟁이 울 엄마  /고진하

아그그 까꿍, 하면 분홍빛 보조개를 지으며 방긋 웃음 짓는 아가의 모습을

쏙 빼닮았다 끼니 거르지 않고 꼬박 진지를 챙겨 드시지만 숟가락질이 서툴러서 이불이나 방바닥에 흘리기 일쑤이고

똥오줌을 못 가려 언제 철이 들꼬, 지청구를 듣지만

천진무구 저 천상의 유희법(遊戱法)을 벗어날 뜻은 없으신가보다

울 엄마 아직 요강에 눈 배설물을 마시는 오줌요법은 모르시지만

이따금 사방 벽에 빛깔도 찬란한 황금 벽화를 그리시는데 그 화풍은 내 소견에도 매우 전위적이시다

엊그젠 14인치 텔레비전 안테나 줄을 뚝 끊어 잇몸으로 잘근잘근 맛있게 씹고 계셨는데, 그 깊은 속내야 다 알 순 없지만

이제 지상의 교신은 두절하고 천상과 직접 교신하시려나보다

가끔씩 콜콜 코를 골며 주무시다 옹알이하듯 들려주는 교신 내용을 해독해 보면, 천상의 쌀 창고는 늘 비었는지 배가 고픈데

왜 밥을 안 주냐는 투정이시다 말썽쟁이

울 엄마, 이제 겨우 두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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