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편의 詩

아직도 고백중 / 함순례

뚜르(Tours) 2023. 9. 4. 09:12

 

 

아직도 고백중  / 함순례

 

은희를 사랑했어요 은희 좀 불러줘 술에 취하면 아직도 사랑의 역주행 중인 광덕 씨, 밤나무 민박에 들어 불 피우고 일각이 지나기 전 대취했다 실제 고속도로에서 역주행하다 경찰에 인계된 일도 있었다는데 그날도 십 년 만에 고향 친구들 만나고 대취하여 돌아오던 길이라 했다

웃을 때는 천상 하회탈 형상이나 까무잡잡한 이마에 굵게 파인 일자 주름 모으면 한 성깔 다부져 보이는 사내, 그가 강력반 형사라고는 차마 말 못하겠다 악착같이 도망가는 놈을 잡으려면 내가 그놈보다 더 악착같으면 되거든요 그런데 은희는 내겐 좀체 떨리지 않는다는 은희는…… 난 누굴 떨리게 할 수 있을까요……,

사랑에 유배당한 쓸쓸한 짐승이 컹컹 짖으며 제 살 물어뜯는 밤이면 이십 년 지나도록 고백 중인 사랑이 도진다 누구도 못 말리는 깡 촌놈의 사랑

- 함순례,『혹시나』(삶창,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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