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편의 詩

오늘은 일찍 집에 가자 / 이상국

뚜르(Tours) 2023. 10. 10. 09:26

 

오늘은 일찍 집에 가자  / 이상국

 

오늘은 일찍 집에 가자

부엌에서 밥을 짓고 찌개가 끓는 동안

헐렁한 옷을 입고 아이들과 뒹굴며 장난을 치자

나는 벌서듯 너무 밖으로만 돌았다

어떤 날은 일찍 돌아가는 게 세상에 지는 것 같아서

길에서 어두워지기를 기다렸고

또 어떤 날은 상처를 감추거나 눈물자국을 안 보이려고

온몸에 어둠을 바르고 돌아가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일찍 돌아가자

골목길 감나무에게 수고한다고 아는 체를 하고

언제나 바쁜 슈퍼집 아저씨에게도

이사 온 사람처럼 인사를 하자

오늘은 일찍 돌아가서

아내가 부엌에서 소금으로 간을 맞추듯

어둠이 세상 골고루 스며들면 불을 있는 대로 켜놓고

숟가락을 부딪치며 저녁을 먹자

- 이상국,『어느 농사꾼의 별에서』(창비,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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