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 / 김남극
늦가을 비가 오고 추위가 거미처럼 천장에 매달리면
나는 몸을 둥글게 말아 엎드려
바닥을 지나는 소리를 듣는다
물소리는 말라가고
그 속에 어떤 울음도 그쳐가고
내가 버린 슬픔도 차츰 멀어져 가는데
그 소리 속에 자꾸 내 몸도 마음도 들어가서는
최대한 몸을 말아 넣고
구부러진 곡선만큼 세상을 껴안아 보려고
손아귀에 힘을 줘 보는데
자꾸 손아귀를 빠져나가는 저 슬픔들
멀리 혼자서 꺼이꺼이 우는 저 슬픔들을
다 내가 감당하지 못하니
서늘한 이 늦가을의 빗소리는
자주 꿈속까지 그 영역을 넓혀오고
난 또 몸을 더 둥글게 말고 엎드려
그 소리를 밤새 듣는다
- 김남극,『너무 멀리 왔다』(실천문학사,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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