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편의 詩

11월이란 /김경미

뚜르(Tours) 2023. 11. 30. 08:55

 

 

11월이란  /김경미

 

 

갑자기 다리를 저는 일
순식간에 눈이 머는 일
심장 부서지기 직전의 일
너무 큰 옷 속에서 몸이 어쩔 줄 모르는 일

누군가가 목의 반쪽을 새빨갛게 물었다

단풍잎이었다

유월에만 붉은 줄 알았는데
아직까지 살아남은 장미의 빨강

넘어진 무릎 색깔을 가졌다니

날아가네 날아가네 날아가네
기러기 같은 손목과 발목
유족의 심장을 하고

이름을 바꾸고 싶은 일

갈대처럼 첫눈 내리고

계절은 다섯 개,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11월

다섯 계절 내내 하도 몰래 드나들어서
11월 날씨만 제일 낡았다

무엇을 진정
누구를 진정 사랑했는지
미안해지는 일
미안하다 말 안 하려 입을 꾹 다문 채


- [당신의 세계는 아직도 바다와 빗소리와 작약을 취급하는지], 민음사,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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