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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취한 대한민국 호, 체펠린처럼 추락 않으려면...

뚜르(Tours) 2024. 9. 15. 07:50

레드 제플린의 첫 앨범 커버

 

1915년 1월 영국 국민은 공포에 사로잡혔습니다. 하늘에서 대형 기구(氣球)를 닮은 비행선들이 불벼락처럼 폭탄을 퍼부었습니다. 상상도 못한 지옥! 독일의 체펠린 호가 등장한 순간이었습니다.

 

이 비행선은 1838년 오늘(7월 8일) 태어난 그라프 체펠린이 만든 것입니다. 그는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남북전쟁에 참전했다가 미시시피 강에서 기구를 처음 봅니다. 나중에 퇴역하고 이를 본뜬 비행선을 개발하려고 했지만 정부의 지원을 받는 데 실패합니다. 심사위원들이 “금속 틀로 만든 것은 하늘에 뜰 수가 없고, 뜬다고 해도 너무 커서 움직일 수 없다”면서 퇴짜를 놓은 것이지요. 체펠린은 결국 자비로 비행선을 만들어 독일의 스타가 됩니다. 그러나 체펠린 호는 영국이 효과적으로 방공망을 구축하면서 역사에서 사라집니다.

 

그로부터 50여 년 뒤인 1969년 1월 ‘빨간 체펠린 호’가 이륙합니다. 한 해 전 영국 런던에서 결성된 록밴드 ‘레드 제플린’이 1집 앨범을 내고, 미국 순회공연에 나선 것이지요. 원래 ‘뉴 야드버즈’라는 그룹이었는데, 이름이 너무 밋밋해서 바꿨습니다. 리드기타 지미 페이지가 록밴드 더후의 멤버들이 “뉴 야드버즈는 납으로 만든 체펠린 호처럼 추락할 것”이라고 놀린 것을 떠올리고 ‘납 체펠린(Lead Zeppelin)’으로 했다가, 미국인들이 ‘Lead’를 ‘리드’로 발음할 것을 우려, ‘Led Zeppelin’으로 바꿨다고 합니다.

 

레드 제플린은 비틀스와 함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록밴드로 꼽힙니다. 블루스, 소울에 아프리카와 인도 음악 등 다양한 장르를 록에 결합하며 헤비메탈 록을 예술로 승화시켰지요.

 

그런 ‘전설의 록그룹’은 1980년 납 비행선처럼 추락했습니다. 술 때문이었습니다. 드러머 존 보냄이 캐나다 순회공연 기간에 보드카 40잔을 마시고 다음날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잠결에 구토하다가 기도가 막혔다고 합니다. 존 보냄의 사망 소식은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지요. 카마인 어피스, 코지 파웰 등 당대 최고의 드러머들이 “레드 제플린의 비행을 멈출 수는 없다”며 드럼을 맡겠다고 나섰지만, 남은 멤버들은 해체를 결정합니다. 고인과의 완전한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서 다른 선택지가 없다며···.

 

술은 이처럼 세계 록의 역사를 바꿨지만, 어쩌면 ‘상승하는 대한민국 호’를 추락시킬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저만의 옥생각일까요?

 

한국인은 서구인보다 알코올 분해효소가 적어서 주량이 적지만, 더 마십니다. 술 사고가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주량 많은 것을 자랑하고, 술 취하는 것을 부추기면서 음주사고가 나면 맹비난하는 ‘이중적 문화’가 있습니다. 술로 해결되는 일은 거의 없고 술은 문제를 증폭시키는데도, 드라마나 영화에선 문제가 생기면 술로 해결합니다. 합리적인 MZ세대는 술을 덜 마시려고 하지만, 대중 매체들은 끊임없이 과음을 부추깁니다. 서울 도심의 옥외 광고판은 아침부터 술 광고를 하고, 지하철 광고판도 술술, 공중파 방송에서도 술술술입니다.

 

그러나 과학의 결론은 명확합니다. 술은 발암물질이고, 한두 잔도 건강에 해로울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선 술로 인한 각종 사고의 후유증도 엄청나지요. 과음은 무사히 넘어가는 경우도 많지만 한번 사고로 이어지면 치명적일 때가 적지 않습니다. 누군가를 취하게 해서 사고가 났다면 이것 역시 ‘간접 범죄’라는 인식이 번져야 합니다.

 

술은 생활과 일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특히 조직의 리더는 술을 조심해야 하고, 자신이나 남에게 조금이라도 해가 되면 끊어야 합니다.  저도 3년 전 금주에 들어가면서 이를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술을 끊으면 컨디션이 좋아져 판단을 명확히 하게 됩니다. 금주 전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시간이 생겨 세상의 변화에 대해 공부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데에도 유리합니다. 반면 숙취로 뇌가 피로하면 회의 때에 자기 통제가 안돼 혼자 떠들거나 냉정해야 할 때 격노할 위험이 커집니다.

 

자신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이 클수록 술을 조심해야 할 겁니다. “편집광만이 살아남는다”는 앤디 그로브 전 인텔 회장의 말마따나 매시간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어야 할 자리라면, 술을 극도로 조심해야 합니다. 술은 ‘고독한 자리’에 있어야 할 사람의 냉철한 판단을 흐리게 만들기 마련입니다.

 

물론, 사람마다 모두 술에 대한 ‘감수성’은 다릅니다. 술자리에 가서도 한두 잔만 음미하면서도 즐겁다면 그것을 잘 누리면 될 겁니다. 그러나 자신이 취하거나, 누군가를 취하게 만들어야 술자리를 파한다면 그건 이미 병입니다. 병을 방치하고 있다면 언젠가 파국이 옵니다. 술 많이 마시는 것은 절대 자랑이 아니고, 부끄러워해야 할 일입니다.

 

정부가 흡연보다 더 해로운 과음을 줄이기 위한 캠페인에 적극 나서고, 최소한 술 권하는 문화를 없애는 데 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빕니다. 레드 제플린은 안타깝게 추락했어도, 대한민국 호가  흐리멍덩 술 문화 때문에 추락해서는 안되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이룩한 나라인데···.

이성주 기자
stein33@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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