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오늘(8월 12일) 서울대병원 중환자실. 삐익~, 한 모니터의 생체신호들이 멈췄습니다. 대장암으로 투병하던 대한민국 패션 아이콘이 75번째 생일을 한 달 앞두고 폐렴 합병증으로 숨을 거둔 것입니다. 언론은 앙드레 김의 별세를 급보로 전했고, 이명박 대통령은 다음날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습니다.
앙드레 김은 1935년 경기 고양군 구파발리(현 서울 은평구 진관동)에서 태어났고 10대 때 6.25 전쟁 와중에 부산으로 피난갑니다. 그곳에서 오드리 햅번의 영화 《화니 페이스》를 보고 패션 디자인에 매료됩니다.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외국 잡지를 보며 패션 디자이너의 꿈만 키우다, 26세 때 국제패션복장학원이 문을 열자 1기생으로 입학합니다.
그는 이듬해 상경해서 소공동에 ‘살롱 앙드레’를 열고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고, 같은 해 지금의 롯데호텔 자리에 있던 반도호텔에서 첫 패션쇼를 펼칩니다.
우리 것에서 뿌리를 둔 그의 패션은 세계에서 인정을 받았습니다. 1966년 한국 디자이너 최초로 파리에서 패션쇼를 열었고 세계 각국에서 패션 한국을 알리는 쇼를 개최합니다. 1980년 미스유니버스대회의 주 디자이너로 활약했고,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대한민국 대표팀 선수복을 디자인하기도 했습니다.
앙드레 김은 자신의 꿈을 위해 평생 고독하게 편견과 싸워야만 했습니다. 아버지도 “남자가 만든 옷을 사 입을까?” 하며 걱정했는데, 현실은 더욱더 냉혹했습니다. 그는 ‘남성 패션 디자이너’라는 말을 싫어했는데, 그만큼 손가락질을 많이 받았기 때문일 겁니다. 초기에는 고객들의 뒤에서 “남자가 옷을…” 하며 비웃는 장면을 수시로 목격했습니다.
그는 흰색을 사랑했습니다. 옷장에는 계절별 30벌씩 120벌의 하얀 옷이 있었고, 승용차도 흰색만 고집했습니다. 늘 흰옷을 입고 '엘레강스하고 판타스틱한' 패션을 추구했지만, 외모와 말투 때문에 코미디 프로의 조롱거리가 되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김대중 정부 때엔 ‘옷로비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왔다가 정치인과 언론으로부터 모욕을 당했습니다. 법사위원장 목요상 위원은 범죄자가 아니라 증인으로 나온 앙드레 김에게 윽박지르며 법에도 없는 본명을 요구했고, 일부 언론은 본명이 김봉남이라고 밝힌 것을 희화화하며 보도했습니다. 스스로 거의 이룬 것이 없는, 자칭 패션 전문가들도 온갖 이유로 ‘뒤에서’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정상의 고객들은 달랐습니다. 브룩 쉴즈, 나스타샤 킨스키 등 당대 최고의 미녀 배우들에서부터 세계적 성악가 조수미까지 그의 옷을 사랑했습니다. 마이클 잭슨은 1996년 첫 내한공연 때부터 앙드레 김의 단골이 됐습니다. 앙드레 김이 마이클 잭슨으로부터 자신의 전속 디자이너가 돼 달라는 요청을 받고, “나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이기 때문에 한 가수의 전속이 될 수는 없다”고 고사한 일화는 유명하지요?
2009년 3월 마이클 잭슨이 팬 미팅에서 앙드레 김의 옷을 입고 7월 공연을 예고하고 있다. 유튜브 BBC뉴스 화면 갈무리.
앙드레 김은 철저하게 완벽을 추구했습니다. “나의 손은 투박하지만, 나의 옷은 눈물겹도록 섬세하다”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지요. 그는 TV 5개를 한꺼번에 켜놓고 봤고, 신문 15가지를 최소한 제목이라도 읽으며 시대에 뒤처지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사회 기여에도 소홀하지 않아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활동했고 수시로 자선 패션쇼를 개최했습니다. 말기 대장암 진단을 받고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엔 주치의였던 방영주 박사를 통해 의료 발전을 위해 10억 기부를 약정했고 숨지기 전까지 5억 원을 내놓았습니다.
앙드레 김을 보는 시각은 두 가지 유형의 삶을 뚜렷이 보여줍니다. 자신에게 생소한 삶에 대해 쉽게 재단하고 조롱거리로 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누군가 힘들게 이룬 삶에 대해 경외하고 무엇인가 배우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해당하나요? 당연히 뒤에 속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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