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김윤수 바오로 신부 '순교자들과 함께 걷는 십자가의 길'. 한수산 성지순례기 에서 옮김.
- 시작기도 -
사랑하올 그리스도 예수님,
처절한 십자가의 고통과 수난을 겸손한 사랑으로 한올 남기지 않고 다 참아 받으신 저의 예수님,
이제 순교자들과 함께 당신 수난의 길을 걷고자 하오니, 저희에게 죄를 통회하는 마음과 주님의 수난을
함께 나눌 용기를 주시어, 당신 십자가를 피로써 증거한 순교자들의 믿음을 본받아 살게 하시고
마침내는 당신과 하나되게 하소서.
제1처
김대건 신부님이 상해에서 조선으로 들어올 때 사용한 라파엘호
- 순교자 김 대건 신부의 편지 중 -
“지극히 사랑하는 교형 여러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내려오시어 직접 수없는 괴로움을 당하셨다는 것을 아십시오. 그의 괴로움으로 그가 당신 교회를 세우셨으니, 이 교회도 십자가와 고난 가운데에서 자라야 하는 것입니다. (중략) 여기에 갇혀 있는 몇몇 교우는 천주의 은총으로 잘들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할 말이 많습니다만, 그것을 어떻게 편지로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여기서 끝마치기로 하겠습니다. 우리는 얼마 안 있어 싸우러 나갑니다. 제발 여러분은 덕을 닦아 하늘 나라에서 다시 만납시다.”
(달레, 한국천주교회사 下권, 112쪽)
제2처
- 순교자 이 경언 바오로의 편지 중 -
“눈을 뜨니 다리가 온통 헤어지고 사방에서 피가 흐르거나 혹은 상처 위에 피가 엉겨 붙어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아아, 나보다 신체가 더 튼튼하지도 못하셨을 예수께서는 올리브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매를 맞으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높은 산꼭대기까지 천 걸음이나 더 되는 곳을 걸어 가셨습니다. 아무도 그를 동정의 눈길로 바라보는 사람이 없었고, 그를 도와주는 교우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나 같은 대죄인에게는 이렇게 동정과 구원의 손길을 뻗쳐 주고 정신을 들게 하느라고 애들을 쓰는군요. 얼마나 감사를 드려야 옳단 말입니까.”
(달레, 한국천주교회사 中권, 152쪽)
제3처
형구돌 - 둘레 2m가 넘는 커다란 타원형의 돌에 가운데에 구멍을 뚫고, 그 구멍사이로 굵은 동아줄을 빼어내어 올가미를 지었다. 그 올가미는 교우들의 목을 죄였으며, 줄 맞은편 쪽에는 힘세고 건장한 장정들에 의해 잡혀졌다.그동안의 고문으로 견디기 힘든 몸은 그 형구돌에 머리가 부딪혀 깨어지고 부수어지게 된다.
- 순교자 원 베드로에 관한 기록 중 -
“관장은 그를 결박하여 물을 퍼부어 추운 밤중에 밖에 내 놓아 얼려 죽이라고 명령하였다. 그래서 원 베드로는 굵은 밧줄로 묶였고 온 몸에 물을 뒤집어 썼다. 이미 그의 온 몸에 얼음이 뒤덮였다. 이 형벌 가운데에서 그는 오직 주의 수난만을 생각하였다. 『나를 위하여 온 몸에 매를 맞으시고 내 구원을 위하여 가시관을 쓰신 예수여, 당신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내 몸이 얼음에 덮여 있는 것을 보십시오.』 그런 다음 감사의 기도를 드리며 목숨을 하느님께 바쳤다. 닭이 두 홰째 울 때에 그는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달레, 한국천주교회사 上권, 369쪽)
제4처
- 순교자 이 루갈다의 편지 중 -
“어머님, 너무 상심하지 마시고 모든 걱정을 억제하셔요. 이 세상을 꿈으로 보시고 영원을 어머님의 본향으로 생각하시고 늘 경계를 게을리 하지 마셔요. 그리고 모든 일에 있어서 천주의 명령을 따르신 뒤에 어머님이 이 세상을 떠나실 때에는, 천하고 약한 자식인 제가 끝없는 행복의 화관을 머리에 쓰고 모든 천상 기쁨이 넘치는 마음으로 어머님의 손을 잡아 영원한 고향으로 모셔드리겠습니다.”
(달레, 한국천주교회사 上권, 538쪽)
제5처
남한산성 수문 일명 시구문 - 순교자의 시신이 버려지던 문
- 순교자 이 여삼 바오로에 관한 기록 중 -
“그는 아직 예비신자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크게 십자가를 긋고, 자기 자신에게 성세를 주노라고 하며 머리에 물을 부었다. 그런 다음 눈이 동그래진 관원을 올려다보며 말하였다. 『 저는 큰 죄인입니다. 그런데 여태껏 때린 모양으로 때리면 아직도 죽을 길이 아득합니다. 제가 죽기를 원하시면, 여기를 치도록 하십시오.』 그러면서 몸 옆구리의 어떤 부분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가 가리킨 데를 두 번 치니, 그는 그만 숨을 거두었다. 그때 그의 나이 43세 가량이었다.”
(달레, 한국천주교회사 中권, 369쪽)
제6처
[ 성녀 김효임 김효주 ] - 피로 꽃피운 영광이 눈부셔... 눈물겹다
- 순교자 정 정혜 엘리사벳에 관한 기록 중 -
“형조에서 다시 6회의 신문을 받고 6회의 고문을 당한 후 사형선고를 받았다. 옥에 다시 갇히자, 기도와 갇힌 이들을 보살피는 것으로 나날을 보냈고, 그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 줄 수 있도록 밖에 나가서까지 구원을 청하기를 꺼리지 않았다. 이 자선사업에 어떻게나 집념하였던지 형장으로 떠나가면서까지 교우들에게 『무엇보다 가난한 사람들과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 많이 해 주세요.』 하는 말 밖에는 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는 11월 24일에 43세를 일기로 참수되어 아버지와 어머니와 두 오라비를 만나러 하늘로 올라갔다.”
(달레, 한국천주교회사 中권, 501쪽)
제7처
핏물이 들어 역사를 증언하는 나무 - 회화나무(일명 호야나무)
300년 된 나무로 여기에 신자들을 묶어 고문했던 흔적으로 아직도 철사줄이 박혀 있다.
- 순교자 유 대철 베드로에 관한 기록 중 -
“하루는 어떤 포졸이 구리로 된 대통을 그의 허벅지에 들이박아 살점을 한 점 떼어내면서 소리쳤다. 『이래도 아직 천주교를 믿겠느냐』 유 베드로는 대답하였다.
『믿구말구요. 이렇게 한다고 믿지 못할 줄 아세요』 그러니까 포졸은 벌겋게 된 숯덩어리를 집어가지고 입을 벌리라고 하였다. 유 베드로가 『자요』하고 입을 크게 벌리니 포졸은 놀라 물러나고 말았다. 어떤 때 그는 고문을 비웃고 형리들의 약을 올리는 것 같이 보였다. 몸에 매달려 너덜거리는 살점을 마치 자기 몸이 아닌 것처럼 잡아 나꾸어 채니, 관원들은 모두 치를 떨었다. 마침내 9월 15일에 최 필립보와 함께 옥에서 교수형을 당하였다. 이때 그의 나이 겨우 13세였다.“
(달레, 한국천주교회사 中권, 482쪽)
제8처
백지사(白紙死) - 처형 방법의 하나. '고문'의 한 방법. 얼굴에 물을 뿌리고 한지를 한 겹씩 붙여 나간다.
당연히 숨이 막히게 되고, 종이가 한장 한장 얼굴에 두텁게 덧씌워지면서 결국은 질식해 죽게 된다.
- 순교자 샤스땅과 모방 신부의 편지 중 -
“오늘, 즉 9월 6일 우리에게 순교하러 나오라는 주교님의 두 번째 명령이 왔습니다. (중략) 길을 떠나는 이 순간에 우리가 느끼는 기쁨을 덜하게 하는 무엇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3년 동안 성사를 주는 행복을 가졌었고, 또 갈라디아인들이 사도 성 바오로를 사랑했듯이 우리를 사랑하는 저 열심한 신입교유들을 떠나는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나 큰 잔치에 가는 길이니, 우리 마음 속에 슬픈 감정이 스며들어오게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친애하는 신입교우들을 여러분의 열렬한 박애심에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안녕히들 계십시오.”
(달레, 한국천주교회사 中권, 459쪽)
제9처
황사영 백서 토굴
- 순교자 정 국보 쁘로다시오에 관한 기록 중 -
“정 쁘로다시오는 자기가 배교한 사실과 배교한 것을 취소하고 죽기를 원한다는 말을 하니 하인들은 그를 미친놈으로 다루고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다. 이튿날 그는 다시 갔다. 그러나 그의 노력은 헛된 것이 아니었다. 3일째인 5월 12일에는 병이 들고 상처가 덧난 탓으로 인하여 걸음을 걸을 수가 없으므로 들것에 들려 형조 근처에까지 가서 대신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대신이 나오자 길 한가운데서 그의 앞에 엎드려 자기의 내력을 말하고 배교한 죄인이므로 자기를 죽게 하여 달라고 청하며 하도 간절히 조르는 바람에 대신은 그를 옥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
(달레, 한국천주교회사 中권, 413쪽)
제10처
갈매못 - 죽음으로 향해 가는 250리 길, 성인들은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마지막까지 신자들의 희생을 막기 위해 애썼던 신부들과 그 푸른 눈의 신부 곁을 차마 떠나지 못하고 죽음을 향해 걸었던 황석두, 장주기… 성인들.
- 순교자 다블뤼 주교의 기록 중 -
“벌 중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주림이요, 그보다도 심한 것은 목마른 것이었다. 다른 형벌을 받으면서는 용맹히 신앙을 증거한 이들도 주림과 목마름에는 넘어가는 이들이 많았다. 하루에 두 번씩 주먹만한 조밥 한 공기밖에는 얻어먹지 못하였기 때문에 나중에는 자기들이 누워 자는 더러운 볏짚 자리를 뜯어먹고 심지어는 옥 안에 기어 다니는 이를 잡아먹기까지 하였다.
(한국 순교자 103위 전, 2권, 8쪽)
제11처
자리갯돌 - 신자의 몸을 들어올렸다가 돌 위에 내리쳐서(자리개질) 죽였던, 돌이다.
머리가 터지고 가슴이 부서지며 죽어 갔을 순교자들의 비명소리. 그들이 흘린 죄 없는 피…
- 순교자 정 약종 아오스딩에 관한 기록 중 -
“형리들이 그의 말을 중단시키고 나무토막에 머리를 대라고 하니, 그는 하늘을 볼 수 있도록 머리를 누이면서 『땅을 내려다보면서 죽는 것보다는 하늘을 쳐다보면서 죽는 것이 낫다.』고 말하였다. 망나니는 벌벌 떨며 감히 치지 못하였다. 그러나 마침내 감탄보다는 징벌에 대한 두려움이 앞서므로 자신없는 손으로 첫 번 칼질을 하였다. 목은 절반밖에 끊어지지 않았고, 아오스딩은 일어나, 보라는 듯이 크게 십자성호를 긋고 조용히 다시 첫 번 자세로 돌아가 치명적인 일격을 받았다.”
(달레, 한국천주교회사 上권, 452쪽)
제12처
진둠벙 - 이 땅 어디에 또 이토록 슬픈 ‘통곡의 연못’이 있으랴. 많은 죄인들을 한꺼번에 죽이기 위해,
신자들을 끌고 나와 바로 이곳에 구덩이를 파고 산 사람을 처넣고 흙과 돌로 메워 버렸는가 하면,
그것조차 번거로우면 신자들을 묶은 그대로 웅덩이에 빠뜨려 죽이기까지 한, 통한의 자리가 이곳이다.
- 순교자 권 상연 야고보와 윤 지충 바오로에 관한 기록 중 -
“관리는 나라의 관습대로 명패에 쓴, 왕이 승인한 결안을 윤 바오로에게 읽으라고 하였다. 윤 바오로는 곧 그것을 받아 큰 소리로 읽었다. 그런 다음 그는 머리를 커다란 나무토막 위에 누이고 여러 번 예수, 마리아의 거룩한 이름을 부르고는 지극히 침착한 태도로 망나니에게 치라는 신호를 하였다. 망나니는 그의 머리를 단번에 잘랐다. 다음은 권 야고보의 차례였는데 그 역시 예수, 마리아의 이름 부르기를 그치지 않았다. 그의 머리도 이내 잘렸다.”
(달레, 한국천주교회사 上권, 354쪽)
제13처
무명 순교자의 묘 - 바퀴벌레 하나를 죽여도 얼굴을 찡그리거늘,
인간이 인간을 살육하는 전쟁도 아니었거늘… 어찌하여 하는 일이 이토록 가혹했단 말인가.
살아서도 드날릴 이름이 없었고, 죽어서도 이름을 남기지 못하고 주님의 무릎 옆에 앉으셨을 분들.
- 순교자 권 데레사에 관한 기록 중 -
“몇 해 전까지 살아 있었던 어느 여교우가 권 데레사가 처형된 뒤에 그 시체를 보았는데, 칼을 세 번 맞은 자리가 있었고 몸이 대단히 아름다워 보였다 한다. 이 순교자들의 시체는 한달이 지난 뒤에야 거둘 수 있었는데 뼈 밖에는 남아 있지 않았었다. 권 데레사의 머리채는 대바구니에 아무렇게나 넣어 1839년에 순교한 남 세바스티아노 집에 보관하였었는데 그 바구니를 열면 향기가 진동하여 온 방안을 가득 채웠다고 여러 증인이 말하였다.”
(달레, 한국천주교회사 中권, 96쪽)
제14처
하늘나라 어디쯤에 이들가족은 모여 계실까 - 어농리 순교자들의 묘역
- 순교자 앵베르 주교의 편지 중 -
“5월 27일 월요일 새벽에 약간 힘이 들기는 하였으나 시체를 훔쳐낼 수가 있었습니다. 순전히 이들을 장사지내기 위해 장만하여둔 작은 터에다 함께 묻었습니다. 나는 행복된 유럽에서와 같이 그들에게 비단 옷을 입히고 귀한 향료를 바르기가 얼마나 소원이었겠습니까마는 우리는 가난도 하거니와 그렇게 한다면 헌신적으로 이 거룩한 사업을 맡아 하는 교우가 너무나 큰 위험을 무릅쓰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저 남녀 별로 각각 옷을 입히고 시체를 자리에 싸서 묻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많은 보호자을 천국에 보냈고, 내가 바라는 바와 같이 어느 때고 조선에 천주교가 왕성하여지면 이 시체들이야말로 국가적인 유물이 될 것입니다.”
(한국 순교자 103위 전, 2권, 44쪽)
입술이 떨리는 잔혹의 극치다.
회화나무에 매달고,
목 잘라 죽이고,
목매달아 죽이고,
돌 위에 들어 메쳐 죽이고,
사람을 눕혀 놓고 돌을 떨어뜨려 죽이고,
그래도 살아서 꿈틀대는 몸뚱어리는 횃불로 눈알을 지지고,
병든 몸 굶겨 죽이고,
엄동에 내몰아 얼려서도 죽였다.
이 순례를 이어 가면서 때때로 털썩털썩 주저앉고 싶게 암담한 마음에 빠져들 때가 몇 번씩 있었다.
어찌 죽여도 이렇게 잔혹하게 죽이는가.
무엇을 훔치지도, 누구를 해치지도 않았다. 단지 하나 그가 믿고 있는 진리가 달랐을 뿐이거늘!
“진정한 의미의 성지 개발은, 살아 있는 우리의 삶이 순교 정신과 믿음으로 충만될 때 비로소 기념물의 의미는 살게 될 것입니다.
… 우리는 거룩한 곳을 거룩하게 보존하고 다듬는 슬기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 슬기는 다른 것이 아니고 상징으로 그곳의 사람들이 사는 것입니다.
순교 성지에서 순교 정신을 빼 버린다면 무엇이 남겠습니까.
우리는 우뚝 솟은 저 순교탑과 함께 우리 마음 안에 순교탑을 세워야 하겠습니다.”
- 시작기도 -
사랑하올 그리스도 예수님,
처절한 십자가의 고통과 수난을 겸손한 사랑으로 한올 남기지 않고 다 참아 받으신 저의 예수님,
이제 순교자들과 함께 당신 수난의 길을 걷고자 하오니, 저희에게 죄를 통회하는 마음과 주님의 수난을
함께 나눌 용기를 주시어, 당신 십자가를 피로써 증거한 순교자들의 믿음을 본받아 살게 하시고
마침내는 당신과 하나되게 하소서.
제1처
김대건 신부님이 상해에서 조선으로 들어올 때 사용한 라파엘호
- 순교자 김 대건 신부의 편지 중 -
“지극히 사랑하는 교형 여러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내려오시어 직접 수없는 괴로움을 당하셨다는 것을 아십시오. 그의 괴로움으로 그가 당신 교회를 세우셨으니, 이 교회도 십자가와 고난 가운데에서 자라야 하는 것입니다. (중략) 여기에 갇혀 있는 몇몇 교우는 천주의 은총으로 잘들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할 말이 많습니다만, 그것을 어떻게 편지로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여기서 끝마치기로 하겠습니다. 우리는 얼마 안 있어 싸우러 나갑니다. 제발 여러분은 덕을 닦아 하늘 나라에서 다시 만납시다.”
(달레, 한국천주교회사 下권, 112쪽)
제2처
- 순교자 이 경언 바오로의 편지 중 -
“눈을 뜨니 다리가 온통 헤어지고 사방에서 피가 흐르거나 혹은 상처 위에 피가 엉겨 붙어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아아, 나보다 신체가 더 튼튼하지도 못하셨을 예수께서는 올리브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매를 맞으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높은 산꼭대기까지 천 걸음이나 더 되는 곳을 걸어 가셨습니다. 아무도 그를 동정의 눈길로 바라보는 사람이 없었고, 그를 도와주는 교우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나 같은 대죄인에게는 이렇게 동정과 구원의 손길을 뻗쳐 주고 정신을 들게 하느라고 애들을 쓰는군요. 얼마나 감사를 드려야 옳단 말입니까.”
(달레, 한국천주교회사 中권, 152쪽)
제3처
형구돌 - 둘레 2m가 넘는 커다란 타원형의 돌에 가운데에 구멍을 뚫고, 그 구멍사이로 굵은 동아줄을 빼어내어 올가미를 지었다. 그 올가미는 교우들의 목을 죄였으며, 줄 맞은편 쪽에는 힘세고 건장한 장정들에 의해 잡혀졌다.그동안의 고문으로 견디기 힘든 몸은 그 형구돌에 머리가 부딪혀 깨어지고 부수어지게 된다.
- 순교자 원 베드로에 관한 기록 중 -
“관장은 그를 결박하여 물을 퍼부어 추운 밤중에 밖에 내 놓아 얼려 죽이라고 명령하였다. 그래서 원 베드로는 굵은 밧줄로 묶였고 온 몸에 물을 뒤집어 썼다. 이미 그의 온 몸에 얼음이 뒤덮였다. 이 형벌 가운데에서 그는 오직 주의 수난만을 생각하였다. 『나를 위하여 온 몸에 매를 맞으시고 내 구원을 위하여 가시관을 쓰신 예수여, 당신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내 몸이 얼음에 덮여 있는 것을 보십시오.』 그런 다음 감사의 기도를 드리며 목숨을 하느님께 바쳤다. 닭이 두 홰째 울 때에 그는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달레, 한국천주교회사 上권, 369쪽)
제4처
- 순교자 이 루갈다의 편지 중 -
“어머님, 너무 상심하지 마시고 모든 걱정을 억제하셔요. 이 세상을 꿈으로 보시고 영원을 어머님의 본향으로 생각하시고 늘 경계를 게을리 하지 마셔요. 그리고 모든 일에 있어서 천주의 명령을 따르신 뒤에 어머님이 이 세상을 떠나실 때에는, 천하고 약한 자식인 제가 끝없는 행복의 화관을 머리에 쓰고 모든 천상 기쁨이 넘치는 마음으로 어머님의 손을 잡아 영원한 고향으로 모셔드리겠습니다.”
(달레, 한국천주교회사 上권, 538쪽)
제5처
남한산성 수문 일명 시구문 - 순교자의 시신이 버려지던 문
- 순교자 이 여삼 바오로에 관한 기록 중 -
“그는 아직 예비신자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크게 십자가를 긋고, 자기 자신에게 성세를 주노라고 하며 머리에 물을 부었다. 그런 다음 눈이 동그래진 관원을 올려다보며 말하였다. 『 저는 큰 죄인입니다. 그런데 여태껏 때린 모양으로 때리면 아직도 죽을 길이 아득합니다. 제가 죽기를 원하시면, 여기를 치도록 하십시오.』 그러면서 몸 옆구리의 어떤 부분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가 가리킨 데를 두 번 치니, 그는 그만 숨을 거두었다. 그때 그의 나이 43세 가량이었다.”
(달레, 한국천주교회사 中권, 369쪽)
제6처
[ 성녀 김효임 김효주 ] - 피로 꽃피운 영광이 눈부셔... 눈물겹다
- 순교자 정 정혜 엘리사벳에 관한 기록 중 -
“형조에서 다시 6회의 신문을 받고 6회의 고문을 당한 후 사형선고를 받았다. 옥에 다시 갇히자, 기도와 갇힌 이들을 보살피는 것으로 나날을 보냈고, 그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 줄 수 있도록 밖에 나가서까지 구원을 청하기를 꺼리지 않았다. 이 자선사업에 어떻게나 집념하였던지 형장으로 떠나가면서까지 교우들에게 『무엇보다 가난한 사람들과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 많이 해 주세요.』 하는 말 밖에는 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는 11월 24일에 43세를 일기로 참수되어 아버지와 어머니와 두 오라비를 만나러 하늘로 올라갔다.”
(달레, 한국천주교회사 中권, 501쪽)
제7처
핏물이 들어 역사를 증언하는 나무 - 회화나무(일명 호야나무)
300년 된 나무로 여기에 신자들을 묶어 고문했던 흔적으로 아직도 철사줄이 박혀 있다.
- 순교자 유 대철 베드로에 관한 기록 중 -
“하루는 어떤 포졸이 구리로 된 대통을 그의 허벅지에 들이박아 살점을 한 점 떼어내면서 소리쳤다. 『이래도 아직 천주교를 믿겠느냐』 유 베드로는 대답하였다.
『믿구말구요. 이렇게 한다고 믿지 못할 줄 아세요』 그러니까 포졸은 벌겋게 된 숯덩어리를 집어가지고 입을 벌리라고 하였다. 유 베드로가 『자요』하고 입을 크게 벌리니 포졸은 놀라 물러나고 말았다. 어떤 때 그는 고문을 비웃고 형리들의 약을 올리는 것 같이 보였다. 몸에 매달려 너덜거리는 살점을 마치 자기 몸이 아닌 것처럼 잡아 나꾸어 채니, 관원들은 모두 치를 떨었다. 마침내 9월 15일에 최 필립보와 함께 옥에서 교수형을 당하였다. 이때 그의 나이 겨우 13세였다.“
(달레, 한국천주교회사 中권, 482쪽)
제8처
백지사(白紙死) - 처형 방법의 하나. '고문'의 한 방법. 얼굴에 물을 뿌리고 한지를 한 겹씩 붙여 나간다.
당연히 숨이 막히게 되고, 종이가 한장 한장 얼굴에 두텁게 덧씌워지면서 결국은 질식해 죽게 된다.
- 순교자 샤스땅과 모방 신부의 편지 중 -
“오늘, 즉 9월 6일 우리에게 순교하러 나오라는 주교님의 두 번째 명령이 왔습니다. (중략) 길을 떠나는 이 순간에 우리가 느끼는 기쁨을 덜하게 하는 무엇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3년 동안 성사를 주는 행복을 가졌었고, 또 갈라디아인들이 사도 성 바오로를 사랑했듯이 우리를 사랑하는 저 열심한 신입교유들을 떠나는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나 큰 잔치에 가는 길이니, 우리 마음 속에 슬픈 감정이 스며들어오게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친애하는 신입교우들을 여러분의 열렬한 박애심에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안녕히들 계십시오.”
(달레, 한국천주교회사 中권, 459쪽)
제9처
황사영 백서 토굴
- 순교자 정 국보 쁘로다시오에 관한 기록 중 -
“정 쁘로다시오는 자기가 배교한 사실과 배교한 것을 취소하고 죽기를 원한다는 말을 하니 하인들은 그를 미친놈으로 다루고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다. 이튿날 그는 다시 갔다. 그러나 그의 노력은 헛된 것이 아니었다. 3일째인 5월 12일에는 병이 들고 상처가 덧난 탓으로 인하여 걸음을 걸을 수가 없으므로 들것에 들려 형조 근처에까지 가서 대신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대신이 나오자 길 한가운데서 그의 앞에 엎드려 자기의 내력을 말하고 배교한 죄인이므로 자기를 죽게 하여 달라고 청하며 하도 간절히 조르는 바람에 대신은 그를 옥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
(달레, 한국천주교회사 中권, 413쪽)
제10처
갈매못 - 죽음으로 향해 가는 250리 길, 성인들은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마지막까지 신자들의 희생을 막기 위해 애썼던 신부들과 그 푸른 눈의 신부 곁을 차마 떠나지 못하고 죽음을 향해 걸었던 황석두, 장주기… 성인들.
- 순교자 다블뤼 주교의 기록 중 -
“벌 중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주림이요, 그보다도 심한 것은 목마른 것이었다. 다른 형벌을 받으면서는 용맹히 신앙을 증거한 이들도 주림과 목마름에는 넘어가는 이들이 많았다. 하루에 두 번씩 주먹만한 조밥 한 공기밖에는 얻어먹지 못하였기 때문에 나중에는 자기들이 누워 자는 더러운 볏짚 자리를 뜯어먹고 심지어는 옥 안에 기어 다니는 이를 잡아먹기까지 하였다.
(한국 순교자 103위 전, 2권, 8쪽)
제11처
자리갯돌 - 신자의 몸을 들어올렸다가 돌 위에 내리쳐서(자리개질) 죽였던, 돌이다.
머리가 터지고 가슴이 부서지며 죽어 갔을 순교자들의 비명소리. 그들이 흘린 죄 없는 피…
- 순교자 정 약종 아오스딩에 관한 기록 중 -
“형리들이 그의 말을 중단시키고 나무토막에 머리를 대라고 하니, 그는 하늘을 볼 수 있도록 머리를 누이면서 『땅을 내려다보면서 죽는 것보다는 하늘을 쳐다보면서 죽는 것이 낫다.』고 말하였다. 망나니는 벌벌 떨며 감히 치지 못하였다. 그러나 마침내 감탄보다는 징벌에 대한 두려움이 앞서므로 자신없는 손으로 첫 번 칼질을 하였다. 목은 절반밖에 끊어지지 않았고, 아오스딩은 일어나, 보라는 듯이 크게 십자성호를 긋고 조용히 다시 첫 번 자세로 돌아가 치명적인 일격을 받았다.”
(달레, 한국천주교회사 上권, 452쪽)
제12처
진둠벙 - 이 땅 어디에 또 이토록 슬픈 ‘통곡의 연못’이 있으랴. 많은 죄인들을 한꺼번에 죽이기 위해,
신자들을 끌고 나와 바로 이곳에 구덩이를 파고 산 사람을 처넣고 흙과 돌로 메워 버렸는가 하면,
그것조차 번거로우면 신자들을 묶은 그대로 웅덩이에 빠뜨려 죽이기까지 한, 통한의 자리가 이곳이다.
- 순교자 권 상연 야고보와 윤 지충 바오로에 관한 기록 중 -
“관리는 나라의 관습대로 명패에 쓴, 왕이 승인한 결안을 윤 바오로에게 읽으라고 하였다. 윤 바오로는 곧 그것을 받아 큰 소리로 읽었다. 그런 다음 그는 머리를 커다란 나무토막 위에 누이고 여러 번 예수, 마리아의 거룩한 이름을 부르고는 지극히 침착한 태도로 망나니에게 치라는 신호를 하였다. 망나니는 그의 머리를 단번에 잘랐다. 다음은 권 야고보의 차례였는데 그 역시 예수, 마리아의 이름 부르기를 그치지 않았다. 그의 머리도 이내 잘렸다.”
(달레, 한국천주교회사 上권, 354쪽)
제13처
무명 순교자의 묘 - 바퀴벌레 하나를 죽여도 얼굴을 찡그리거늘,
인간이 인간을 살육하는 전쟁도 아니었거늘… 어찌하여 하는 일이 이토록 가혹했단 말인가.
살아서도 드날릴 이름이 없었고, 죽어서도 이름을 남기지 못하고 주님의 무릎 옆에 앉으셨을 분들.
- 순교자 권 데레사에 관한 기록 중 -
“몇 해 전까지 살아 있었던 어느 여교우가 권 데레사가 처형된 뒤에 그 시체를 보았는데, 칼을 세 번 맞은 자리가 있었고 몸이 대단히 아름다워 보였다 한다. 이 순교자들의 시체는 한달이 지난 뒤에야 거둘 수 있었는데 뼈 밖에는 남아 있지 않았었다. 권 데레사의 머리채는 대바구니에 아무렇게나 넣어 1839년에 순교한 남 세바스티아노 집에 보관하였었는데 그 바구니를 열면 향기가 진동하여 온 방안을 가득 채웠다고 여러 증인이 말하였다.”
(달레, 한국천주교회사 中권, 96쪽)
제14처
하늘나라 어디쯤에 이들가족은 모여 계실까 - 어농리 순교자들의 묘역
- 순교자 앵베르 주교의 편지 중 -
“5월 27일 월요일 새벽에 약간 힘이 들기는 하였으나 시체를 훔쳐낼 수가 있었습니다. 순전히 이들을 장사지내기 위해 장만하여둔 작은 터에다 함께 묻었습니다. 나는 행복된 유럽에서와 같이 그들에게 비단 옷을 입히고 귀한 향료를 바르기가 얼마나 소원이었겠습니까마는 우리는 가난도 하거니와 그렇게 한다면 헌신적으로 이 거룩한 사업을 맡아 하는 교우가 너무나 큰 위험을 무릅쓰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저 남녀 별로 각각 옷을 입히고 시체를 자리에 싸서 묻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많은 보호자을 천국에 보냈고, 내가 바라는 바와 같이 어느 때고 조선에 천주교가 왕성하여지면 이 시체들이야말로 국가적인 유물이 될 것입니다.”
(한국 순교자 103위 전, 2권, 44쪽)
입술이 떨리는 잔혹의 극치다.
회화나무에 매달고,
목 잘라 죽이고,
목매달아 죽이고,
돌 위에 들어 메쳐 죽이고,
사람을 눕혀 놓고 돌을 떨어뜨려 죽이고,
그래도 살아서 꿈틀대는 몸뚱어리는 횃불로 눈알을 지지고,
병든 몸 굶겨 죽이고,
엄동에 내몰아 얼려서도 죽였다.
이 순례를 이어 가면서 때때로 털썩털썩 주저앉고 싶게 암담한 마음에 빠져들 때가 몇 번씩 있었다.
어찌 죽여도 이렇게 잔혹하게 죽이는가.
무엇을 훔치지도, 누구를 해치지도 않았다. 단지 하나 그가 믿고 있는 진리가 달랐을 뿐이거늘!
“진정한 의미의 성지 개발은, 살아 있는 우리의 삶이 순교 정신과 믿음으로 충만될 때 비로소 기념물의 의미는 살게 될 것입니다.
… 우리는 거룩한 곳을 거룩하게 보존하고 다듬는 슬기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 슬기는 다른 것이 아니고 상징으로 그곳의 사람들이 사는 것입니다.
순교 성지에서 순교 정신을 빼 버린다면 무엇이 남겠습니까.
우리는 우뚝 솟은 저 순교탑과 함께 우리 마음 안에 순교탑을 세워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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