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진아, 기도소리 들리지? 하느님이 살려 주실거야…."
1월 26일 오후 경기 시흥 시화병원 중환자실. 신자들의 간절한 기도 속에서 엄마 박정윤(마리안나, 42)씨는 이미 뇌사상태에 빠진 딸 이수진(미카엘라, 중1) 귓가에 살며시 속삭인다. 주변에는 양팔기도를 하거나 묵주기도를 바치는 수원교구 시화바오로본당 신자들로 발디딜 틈조차 없다.
수진이가 의식을 잃은 건 이날 오후 4시 30분께였다. 친구들과 인근 호수공원 내 얼어붙은 저수지에서 놀다가 얼음이 깨져 2m 깊이 물에 빠진 게 화근이었다. 구급대가 도착했을 때 수진이는 이미 호흡이 멎어 있었다. 곧바로 응급실로 옮겨 심폐소생술에 들어갔지만 깨어나지 않자 의료진은 고개를 내저었다. "1%의 기적 외에는 희망이 없어요. 이미 뇌가 손상된데다 설령 깨어나더라도 일주일 이상 살지 못합니다." 병원으로 실려온 지 2시간30여분만에 수진이에겐 의학적으로 사망선고가 내려졌다.
수진이 아버지 이명렬(클레멘스, 48)씨는 마음을 차분히 먹고 주변사람들에게 알렸다. 장기기증 의향을 묻는 주치의 말에 부모는 "수진이를 통해 다른 생명을 구한다면 뜻깊은 일이 아니겠느냐"며 무거운 마음으로 응했다.
그 때 소식을 전해들은 본당 신자들이 병원에 달려왔다. 본당 신자이자 마취과 진료부장인 서재왕(루카, 42)씨는 이례적으로 수술실을 개방, 기도방으로 만들어줬고 신자들은 '함께 기도하면 이뤄지지 않을 일이 없다'는 굳센 믿음으로 밤샘기도를 했다. 본당 송병선(주임)ㆍ이남수(보좌) 신부도 수진이에게 병자성사를 주고 미사마다 수진이를 위한 기도 지향을 넣었다. 일부 신자들은 루르드 성지에서 떠온 기적수도 가져왔다. 이같은 공동체의 기도에 수진이 부모는 병원 한켠에 서서 감사 눈물만 흘렸다.
이튿날 새벽 5시반. 월드컵 응원을 방불케 하는 환성과 함께 박수가 터져나왔다. 뇌사상태에 빠진 지 무려 13시간만에 수진이가 의식을 차린 것. 수진이를 위해 밤새 기도한 신자들은 의식이 돌아온 수진이를 보며 서로 얼싸안고 감사기도를 바쳤다. 소생 가능성이 없다고 진단을 내린 의료진은 "믿을 수 없다"며 놀라워했다. 모든 과정을 지켜본 서 진료부장 또한 자신을 납득시킬 수가 없었다. 의학적 설명이 가능하지 않았기 때문. 병원에 몰려온 많은 신자들에게 수술실을 개방하면서도 "이들이 희망을 버리도록 돕는 게 내 임무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수진이가 의식을 되찾자 서 부장은 깨달았다. '왜, 나만 믿지 못했나.…'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문득 말씀 달력을 넘기던 그는 놀라운 말씀을 발견했다.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마르 4, 40)
수진이는 이제 상당히 호전돼 말도 곧잘 하고 씩씩하게 걸어다닌다. 어떻게 병원에 오게 됐는지 어렴풋이 기억하는 수진이는 "기적으로 살아났다"는 의사들의 말에, "착하게 살겠다"며 환하게 웃는다. 수진이가 의식을 되찾은 것도 큰 기적이지만, 수진이를 위해 기도한 모든 이들의 가슴에도 '작은 기적'이 일어났다. 쉬는신자들이 수진이 얘기를 듣고 다시 성당을 찾았고, 몇차례 자살시도를 했던 신자까지도 삶의 희망을 찾았다. 본당 각 단체들은 아직도 '수진이를 위한 9일기도'를 바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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