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볼 수 있는 소경
F. 쿄치와 L. 치리의 책을 보면 사진과 함께 타자로 입력한 긴 문서가
수록되어 있는데, 여기에 몇 부분을 발췌하여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저는 젬마 데 조르지입니다. 과학적으로는 장님이지만 사실 저는 보고
쓸 수 있습니다.
저는 1939년의 성탄절 밤에 아그리젠토 주 리베라에서 태어났습니다.
제가 태어난 지 3개월 후에 어머니는 저를 목욕시키시다가 크게
놀라셨습니다.
제 눈에 눈동자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연실색하신 어머니와 할머니께서는 곧바로 의사에게 달려가셨습니다.
의사 선생님 또한 저를 보시더니 당혹해하시며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 의사 선생님은 안과 전문의가 아니었기 때문에 쿠코와 콘티니라는
팔레르모의 안과 전문의 두 분을 소개시켜주셨고, 두 의사 선생님은
저를 진찰하신 후 제가 눈동자 없는 장님이라 는 것을 확인해주셨습니다.
저는 그때 제게 일어났던 일들을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할머니께 그 사실을 얘기해 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나는 젬마의 할머니 마리아 미첼리입니다. 어느 날 조카 수녀님이
우리 집에 왔는데, 그 지경에 놓인 젬마를 보더니 비오 신부님의 보호에
의탁해 바라고 권유하더군요.
그분이 바로 성인이시라면서요. 처음엔 별로 믿고 싶지 않았지만,
나중엔 가능한 빨리 비오 신부님께 가 보자는 쏙으로 생각을 바꾸었지요.
한편 조카 수녀님은 수도원으로 돌아가서 비오 신부님께 젬마에 대해
편지를 썼씁니다.
어느 날 밤 수녀님의 꿈에 그 신부님이 나타나 "젬마가 어디 있죠?
수녀님께서 너무 많이 기도하는 바람에 제 머리가 어지럽습니다" 하고
말씀하시더랍니다.
수녀님이 꿈에서 젬마를 보여드리자 비오 신부님은 젬마의 두 눈에
십자성호를 그어주신 후 사라지셨대요. 수녀님은 그때 생각을 우리에게
편지로 써 보냈습니다.(……)
우리는 가난한 순례자들처럼 여러 고장을 전전하며 바다도 건너야 하는
긴 여행을 떠났습니다.
1947년 6월 6일의 일이었는데, 전쟁 직후라서 여행하기에는 최악의
조건이었던 셈이지요.
여기에서 할머니는 그 기적에 대해 세 쪽에 걸쳐서 뺵빽하게
묘사했다. 작가 렌조 알레그리는 할머니의 전언에 만족하지 않고
젬마 데 조르지를 찾아갔다.
그는 젬마가 그 마을에서 수녀가 된 사실을 알아냈고 기적에 대한 그
녀의 말을 기록으로 남 겼다. 핵심적인 부분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기차가 긴 해안을 따라 달리고 있는 동안 저는 뭔가를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어요. 할머니께 그 사실을 말씀드렸지만 믿으려 하지 않으셨죠.
우리는 비오 신부님께 고해성사를 보러 산 조반니 로톤도로 갔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저보고 신부님께 치유의 은총을 청하라 하셨지만 저는
그걸 까맣게 잊어버렸어요
(그때 저는 겨우 일곱 살 반밖에 안 된 어린아이였으니까요).
그렇지만 제가 신부님 앞에 무릎을 꿇자마자 신부님께서 당신 손에 난
상처를 제 눈에 대고 십자성호를 그으셨던 것은 기억이 납니다.
할머니께서는 제가 신부님께 은총을 청하는 것을 잊어버렸다는 것을
아시고 매우 안타까워 하 시며 눈물을 흘리셨어요. 우리는 할머니께서
고해성사를 보실 때까지 성당 안에서 하루 종일 있었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저를 위해 신부님께 은총을 청하셨어요.
비오 신부님은 "내 딸아, 믿음을 가지세요"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그 어린이는 울지 않아도 됩니다.
할머니도 걱정하지 마세요. 젬마는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희망을 가득 안고 산 조반니 로톤도를 떠났습니다.
기차를 타고 오면서 보았던 그 희미했던 것들이 이제 점점
더 명확하게 보였어요.
저는 조금씩 제 시력이 좋아진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코센자에 도착했고(……) 할머니는 저를 병원의
안과 의사에게 보였지요.
의사는 대번에 이런 상태로는 아무것도 볼 수 없다고 말했지만,
할머니의 고집 덕분에 저는 몇 가지 간단한 검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의사는 놀라서 이렇게 말했어요.
"정말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사람은 눈동자 없이 볼 수 없는데 어째서 이 아이는 볼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어요."
그때부터 제 시력은 점점 좋아졌습니다. 학교도 다니고 읽기와
쓰기도 배울 수 있었어요.
지금의 제 생활은 완전히 정상적인 사람과 다를 게 전혀 없습니다.
젬마는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하느님께서 비오 신부의 손을
통해 자신에게 베풀어주신
기적을 전했다. 그녀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촬영되었다.
1991년 11월에는 줄리아노 페라라가 진행하는 '린키에스타'
(심층탐구)라는 텔레비전 프로그 램에 출연하였다. 수백만 시청자들이
52세의 시칠리아 여자의 눈을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눈은 44년 전 비오 신부가 상처난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졌을 때부터 눈동자 없이 볼 수 있게 된, 바로 그 눈이었다.
하느님의 사람 「피에트렐치나의 비오 신부」Padre Pio
테레시오 보스코 지음/이건옮김/가톨릭출판사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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