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관계 Ⅱ: 해설
인간 관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인간 관계는 자신의 일부가 되며 자아 형성의 기초가 된다.
중요한 인간 관계가 끊어지게 될 때,
그 슬픔은 견딜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지며 그 슬픔의 깊이에 우리
자신도 놀라게 된다. 우리는 인간 관계가 끊어지게 되기 전에는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미처 깨닫지 못할 수도 있다. 우리는
슬픔을 견디지 못하는 자신을 책망하기도 한다.
"마치 죽기라도 한 것처럼 왜 그러니?"
그러나 친구와 헤어지게 된다거나 소중한 관계가 끊어지는 것은
일종의 죽음의 형태임에 틀림없다.
모든 인간 관계를 끝까지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우리 마음 속의 무엇인가가 그렇게 노력하도록 만든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시절의 친구들 - 가장 소중한 친구로
지내자고 굳게 약속했던 이들 - 은 결국 전국 방방곡곡으로 흩어져
연락이 끊기게 된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 때 _ 예를 들어
고향집을 방문했을 때 - 마치 낯선 사람과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 그들이 왜 그렇게 다르게 변했는지 의아해하게 된다. 승진
하게 된다거나 직장을 옮기거나 은퇴했을 때, 우리는 그러한 변화로
인해 소중한 친구들과의 친밀감을 잃게 되거나 중요한 동료들을
잃게 된다.
상대와의 관계가 끊어지게 된 배경에 자신의 잘못이 없을 경우
- 앞의 이야기에서 빌의 전근 으로 헤어지게 된 경우처럼 - 에는
그 슬픔과 상실감은 더욱 크다. 우리 마음 속에 그 친구가 차지하고
있던 자리에 큰 구멍이 뚫린 것을 느낀다. 그러나 이러한 상실감은
우리의 마음을 혼란케 하지는 않는다. 그러한 상실감은 분명 매우
슬픈 것이긴 하지만 우리는 그 상실감을 이해한다. 그 상실감은
분명한 것이고, 기대된 것이고, 자연스런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빨리
치유될 수 있다.
혼인이나 오랜 인간 관계가 끔찍한 과정을 겪으며 파경에 이른 경우
우리의 마음은 황폐화 된다. 그런 경우에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말하곤 한다.
"차라리 죽었다면 이렇게 괴롭지는 않을거야. 일단 헤어지고 나면
모든 상처가 사라지리라고 생각했는데, 어떤 때는 그 전부다 훨씬
더 고통스러워."
결혼생활이나 어떤 인간 관계가 아무리 지긋지긋했었다 하더라도
헤어진 후에 느끼는 분노·죄책감·슬픔·실망 등은 안도감보다
훨씬 크다.
상대방이 "당신을 더이상 사랑하지 않아." 또는 "다른 사람이 생겼어."
라고 말하며 헤어지기로 결정할 때 우리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다.
버림받은 느낌, 하찮게 여겨지는 느낌 외에도 여러 가지 혼란스러운
다른 감정들을 겪게 된다. 상대방을 탓하거나 공격하고 싶은 충동이
상실감이나 슬픔과 뒤섞이며 때론 그런 충동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러면서 한번쯤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자책감이 분노·슬픔·우울함과 뒤섞이게 된다.
그러한 감정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헤어지기로 결정한 쪽이 자신일 경우에도 - 합당한 이유로 그렇게
했다 하더라도 - 자신을 탓하는 내면의 갈등을 겪게 된다. 자신이
그렇게 결정한 것에 대한 정당함을 확인하기 위해 그 동안 상대와
맺어왔던 관계에 대해 여러 번 정리해 보았을 수도 있다. 그랬다
하더라도 상실에 대한 슬픔을 느끼게 된다.
다른 감정들이 상실을 겪고 있는 이의 마음을 복잡하게 할지도 모른다.
특히 두려움의 감정, 앞으로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두려움, 인생을 혼자서 살아가야 한다는 두려움, 자녀들에 대한 책임을
혼자서 떠맡아야 한다는 두려 움, 이웃과의 인간 관계를 원활하게 유지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리고 남은 인생 을 홀로 보내야
한다는 두려움 등이다.
깨어진 인간 관계의 슬픔을 달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의식(儀式)은
없다. 다른 이들은 우리를 위로한다면서 상대방과 헤어지기를 정말
잘했다든가 또는 상대방에 대해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사실들을
폭로해 가며 엉뚱하게 축하를 하곤 한다.
우리에게 솔직한 마음을 표현할 기회를 주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관계가 깨어진다는 것은 당사자에게 매우 심각한 상실이다.
그것을 이겨내고 위안을 받기 위해서는 그 슬픔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마음을 가다듬고 앉아 깊이 심호흡을 하십시오.
사별(死別)한 사람들은 제외하고, 기억할 수 있는 데까지 과거로
돌아가십시오. 그 상실들을 당신의 수첩에 적어 보십시오. 각각의
인물들을 회상해보십시오. 어떻게 만났으며 서로 어떤 매력에
끌렸는지. 함께한 일들과 가장 좋았던 때 그리고 가장 힘들었던와
이별 등등. 상대방을 기억하게 할 사진이나 소품이 있으면 더 생생
하게 회상할 수 있도록 그것을 찾아 살펴보십시오.
●깨어진 인간관계에 대해 회상하거나 수첩에 적는 중에 어떤 한
사람과 맺었던 관계가 특별히 마음을 괴롭힐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는 기억에 한참 동안 머물러 있으십시오. 마음이 불쾌해져
더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더라도 그에 대한 감정이 모두 드러나도록
내버려 두십시오. 그 감정들을 충분히 느끼십시오.
눈물이 나면 우십시오. 분노를 느끼는 사람에게 편지를 써서 찢어
버리든지 태워버리십시오. 그런 감정 중 떨쳐버릴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면 다음과 같은 기도를 할 수도 있습니다.
"주님, 제 분노와 고통과 슬픔을 모두 당신 손에 맡깁니다. … 하도록
도와주십시오."
이런과정을 여러 번 반복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림 솜씨에 신경 쓰지 말고, 어떤 상대와 헤어지게 된 일에 대해
느끼는 바를 그려보십시 오. 데생도 좋고 수채화나 유화도 좋습니다.
자유롭고 꾸밈없이 그리십시오. 어떤 식으로든 자신을 비판하지
마십시오.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정확히 표현하되 되도록이면
앉은 자리에서, 한번에 그려내도록 하십시오.
그림을 다 그린 후에는 그 그림을 살펴보며 숙고하십시오.
그러고 나서 그림을 치워놓으십시오. 며칠 지난 후에 그 그림을
꺼내어 다시 한번 반성해 보십시오. 그 상실감을 극복할 마음의
준비가 되었는지, 또는 그것을 떨쳐버리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는지 반성해 보십시오.
●어쩌면 최근에 깨어진 관계로 진통을 겪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상대와의 관계가 깨어짐으로써 자신이 잃게 된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인식하도록 하십시오. 지위? 위신? 안정된 생활? 우정? 연줄?
자신이 느끼는 감정들과 그것이 의미하는 바에 귀기을이십시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십시오. 성령께 함께 해주시기를 구하며 이를
이겨낼 수 있는 은총을 구하십시오.
●상대와의 관계가 고민 끝에 끝나게 되었든, 엄청난 슬픔을 안은
채 끝났든, 그 관계를 통해 당신은 분명 어떤 긍정적인 것도 얻었을
것입니다. 깨어진 관계들을 적은 목록을 다시 한번 살펴보며 각
관계가 현재 당신의 자아 형성에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 숙고해
보십시오. 헤어진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 마지막으로, 소중한 인간 관계를 포함해서 이 세상 모든 것은
지나가는 것임을 자각하면 서 기도합시다. 인생의 어떤 시기의
인간도 소중하니, 그 안에서 기쁨과 감사를 느낄 수 있도록 은총을
구하십시오.
성서 말씀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이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보라, 나는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은 늘 내 앞에
서 있다(이사 49,15-16).
마침기도
하느님, 제가 사귀었던 모든 사람들은 아직도 제 안에 살아 있습니다.
깨어진 관계와 슬픈 이별로 상처받은 제 마음을 치유해 주십시오.
소중했던 사람들을 통해 누린 모든 은총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사랑이 얼마나 가슴 아픈 것인지를 알고 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계속
사랑할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복된 슬픔」
조안 군첼먼 지음 / 강우식 옮김 / 바오로딸 펴냄
- 개인날 오후님께서 올려주신 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