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주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어버이들은 자녀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지 말고
주님의 정신으로 교육하고 훈계하며
잘 기르십시오(에페 6,1.4).
가정은 가장 기초가 되는 공동체입니다.
어렸을 때 이 공동체 안에서 배운 모든 것이
삶의 뿌리가 됩니다.
어렸을 때 가정 환경은
지금의 나의 거울이며 나의 무의식입니다.
그 무의식은 현재 나에게
가장 강하게 영향을 미치는 에너지이며 힘입니다.
현재의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기를 원한다면
어렸을 때 자라온 환경을 보면 됩니다.
이때 굳어진 삶의 패턴과 맺었던 관계들은
지금도 계속 영향을 미치고 있고
아마 거의 같은 패턴을 반복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만약 존경과 사랑을 듬뿍받은 가정에서 자란 사람은
다른 사람을 그런 식으로 대할 것입니다.
그러나 학대하는 가정에서 자란 사람은
남을 존경하기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부모나 자녀 모두에게 해당합니다.
왜냐하면 자녀된 사람은 분명 부모가 될 것이며
부모가 되어서 자신이 부모가 하는 것을 본대로
자녀에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쨌거나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되물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새로운 공동체 안에서 부모와 자녀의 역할은
언제나 동시에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가정의 해(1994)의 축하 메시지,
가정에 보내는 편지를 통해
부모가 자녀에게 해야 할 존중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 부모가 자녀들을 왜 존중해야 하는지를
간접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존중하는 것”은 이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존중은 본질적으로 이타적인 자세이다...
네 번째 계명인 효도는 부모님께 드려야 하는 것이며
가족의 선을 위해 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부모들은 자녀들을 존중해야 한다.
거룩한 교훈으로 생각하고
부모들은 자녀들을 사랑과 존중하는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
그렇게 한 다음에 우리는 상호 존중에 관해 이야기 할 수 있다.
“부모께 효도하라.”는 계명은 간접적으로는 부모들에게
아들과 딸들을 존중하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자녀들은 존엄성을 가진 살아 있는 한 인간이기에
존중을 받을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우리는 삶의 모든 면을 더 존중할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이러한 존중의 대상에는 갓 태어난 아이나
부모의 집을 떠나려고 하는 젊은이 모두가 포함된다는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미국 주교회의는 우리에게 다음을 상기시켜줍니다.
가정의 아이들은 어른들과 함께 한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공유한다.
그들 역시 상호 계약의 한 부분이다.
부모들은 아이들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대하고,
그들에게 책임의식을 심어주며,
그들의 감정과 사고를 진지하게 들음으로서
존중하는 마음을 표시할 수 있다.
학대는 자녀들로부터 개인적인 특성을 빼앗는 것입니다.
이것은 가족을 둘로 쪼개는 것입니다.
한쪽은 어린이로부터의 존경, 순종
그리고 존중을 받고자 하는 동시에
어린이들을 마음대로 다룰 권리를 주장하는 어른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다른 쪽은 부모들에게 무조건적이고
논의할 여지가 없는 존경, 존중 그리고 복종을 해야만 하는
의무가 있는 자녀들입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가족의 기능을 이등분하는 것은
좋은 본보기를 통해서 지도할 가능성을 포기하는 것이고
내가 한 행동은 본받지 말고,
'내가 하라는 대로 해'라고 말하는
만성적인 위선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들은 울면서 떠나 간 길을,
위로 받으며 돌아오리라.
넘어지는 사람 하나 없도록
탄탄대로로 해서 시냇물가로 인도하리라.
나는 이스라엘의 아비요,
에브라임은 나의 큰아들이다(예레 31,9).
영적 성장을 위한 감성수련 문종원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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