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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반영인 피조물의 참모습

뚜르(Tours) 2007. 12. 5. 11:29
 
 
 

성령의 반영인 피조물의 참모습 하느님이시지만 스스로를 낮추어 인간이 되신 예수님의 생애와 체험은 우리 신앙의 핵심입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신다는 것은 이교도인들은 물론 이스라엘인들에게도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었습니다. 구원의 길을 우리에게 보여주시기 위해 하느님께서 스스로 인간 조건 안에 들어오셨다는 기쁜 소식, 곧 복음은 인류에게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것입니다. 마리아는 이 계시를 맨 처음 깨달은 분으로서 하느님의 놀라우신 일을 알아듣기 위해 모든 일을 마음 속에 간직하셨습니다.(루카 2,51) 하느님의 마음은 마리아에게 이 신비를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이사야 예언서는 몇몇 대목에서 그리스도께서 한 인간으로서 겪으신 경험을 우리가 이해 하도록 도와줍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많은 유다인처럼 성서에서 배우셨으며 여러 차례에 걸쳐 성서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야훼다. 또 누가 있느냐? 나밖에 다른 신은 없다"(이사 45,5) 라고 반복되는 이사야 예언자의 확언을 받아들이셨습니다. 인간 예수님께서는 예언서의 이 말씀을 읽으시면서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 그리고, 인간과 완전한 타자(他者)사이에 존재하는 무한한 거리를 체험하셨습니다. 예수님만큼 이 무한한 거리에 대하여 깊이 깨달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어떠한 마음으로 평생을 하느님께 대한 깊은 흠숭과 예배에 잠겨 사셨을지 우리는 직감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인간이 하느님을 찬미하고 섬기기 위해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성 이냐시오보다 훨씬 더 깊이 깨달으셨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아버지"(루카 10,21) 하느님께 마음을 향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자주 접합니다. 이사야는 또 다른 대목에서 케루빔들이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이사 6,3) 라고 노래하며 성전에서 하느님을 흠숭하고 그분께서 거룩하심을 찬미하는 장엄한 광경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이 되셨지만 하느님의 거룩하심을 조금도 축소시키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분께서는 구약과 예언자들의 모든 예언을 새롭게 하시고 완성하셨으며 우리를 하느님과 더욱 친밀한 관계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일종의 역설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인성과 결합하심으로써 우리에게 하느님의 빛을 가져다 주시면서 동시에 하느님과의 무한한 거리를 깨닫게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역설은 절대자에 대한 우리의 목마름 그 자체에 비길 수 있으며, 우리의 불완전을 깨닫게 해주는 동시에 우리를 무한히 높여줍니다. 하느님과 우리 사이에 가로놓인 심연을 깨닫게 해주시는 예수님께서는 감사와 찬미를 받으셔야 마땅합니다. 우리는 그분께서 보여주신 모범으로 인간 조건의 현실 안에서 하느님을 예배하고, 우리를 완성으로 인도해주는 유일한 길을 발견하고 배우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에서 "예배". 또는 존경과 찬양의 표시인 "엎드리다"라는 단어를 10번이나 되풀이하여 사용하십니다. "그러나 진실한 예배자들이 영과 진리 안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사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이들을 찾으신다. 하느님은 영이시다. 그러므로 그분께 예배를 드리는 이는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요한 4,23-24). 하느님께서는 영이십니다. 앞서 언급한 피조물의 역설이 바로 여기서 밝혀집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완전한 타자(他者), 곧 인간의 상상을 무한히 초월하는 완전히 다른 분으로서 하느님을 깊이 체험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분으로부터 우리의 정체성, 곧 창조주와 무한의 거리에 있는 피조물의 진리를 밝혀주십니다. 주님께서는 완전한 타자인 창조주로서만이 아니라 성령이시며 우리와 절대적으로 가까우신 분,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우리와 가까우신 분, 그리고 우리 삶의 가장 심오한 곳에 빛을 밝혀주시러 오시는 분으로 하느님을 체험하셨습니다. 인간 예수의 마음은 사람들 사이에 현존하시며 그들을 위하여 애태우시는 성령을 체험하십니다. 예수의 가슴 속에서 포도밭에 대한 하느님의 뜨거운 사랑과 열정이 용솟음칩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사야 예언자의 입을 통하여 "내가 포도밭을 위하여 무슨 일을 더 해야 한단 말인가?"(이사 5,4)라고 선포하십니다. 그리고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위로하여라"(이사 40,1)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백성을 두고 애태우시는 성부의 심정을 이해하셨습니다. 그러기에 "누구를 보낼 것인가?" 하고 물으시는 하느님의 말씀에 주님께서는 "제가 여기 있나이다. 저를 보내십시오!" 라고 곧바로 대답하십니다. 하늘과 땅의 유일한 주님이신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이사야의 찬미를 새롭게 하신 분께서 같은 이사야의 입을 통해 이루어진 영원하신 분의 약속을 완성하실 것입니다.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이, 내가 선택한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내가 그에게 나의 영을 주었으니 그는 민족들에게 공정을 펴리라. 그는 외치지도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으며 그 소리가 거리에서 들리게도 하지 않으리라. 그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 그는 성실하게 공정을 펴리라. 그는 지치지 않고 기가 꺾이는 일 없이 마침내 세상에 공정을 세우리니 섬들도 그의 가르침을 고대하리라. 하늘을 창조하시고 그것을 펼치신 분 땅과 거기에서 자라는 온갖 것들을 펴신 분 그곳에 사는 백성에게 목숨을, 그 주위를 걸어다니는 사람들에게 숨을 넣어 주신 분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주님인 내가 의로움으로 너를 부르고 네 손을 붙잡아 주었다. 내가 너를 빚어 만들어 백성을 위한 계약이 되고 민족들의 빛이 되게 하셨으니 보지 못하는 눈을 뜨게 하고 갇힌 이들을 감옥에서,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이들을 감방에서 풀어 주기 위함이다."(이사 42,1-7) 아버지께서는 예수님께서 세례받으실 때 모든 사람들 앞에서 이 약속을 다시 반복하십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태 3,17) 우리의 신앙은 그 순간에 그리스도께서 느끼신 감동, 그분을 밝혀준 빛, 인간으로서 체험한 가까이 계시는 하느님의 현존 등과 같은 이 모든 체험이 어떠하였을까를 상상하게 해줍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러한 영적 빛 속에서 당신의 사명을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게서는 공생활을 시작하시며 나자렛 성전에서 이사야 말씀을 기억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카 4,18-21). 하느님의 얼굴을 뵙고 싶어했던 같은 일부 증인들은 이미 완전한 타자(他者)인 동시에 더없이 가까이 계시는 분이신 하느님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실 수 없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느님의 얼굴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 얼굴을 보지는 못한다. 나를 본 사람은 아무도 살 수 없다. …여기 내 곁에 자리가 있으니, 너는 이 바위에 서 있어라. 내 영광이 지나가는 동안 내가 너를 이 바위굴에 넣고, 내가 다 지나갈 때까지 너를 내 손바닥으로 덮어 주겠다. 그런 다음 내 손바닥 을 거두면, 네가 내 등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얼굴은 보이지 않을 것이다."(탈출 33,20-23) 하느님께 대한 인간의 이중 관계가 인간 예수님의 마음 속에서 활발히 고동쳤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예수님의 마음을 통하여 피조물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완전한 타자(他者)이신 하느님을 진리 안에 예배하고 당신의 피조물들에게 완전히 가까이 계시는 하느님을 영으로 예배합니다. 그리스도의 마음 속에 창조된 자의 진실이 부각될수록 하느님의 위대하심이 더욱 드러납 니다. 성령께서 당신의 사업을 하실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드릴수록 인간은 하느님과 더욱 깊이 친교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덕택으로 우리는 하느님을 예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인식과 흠숭으로써 하느님을 예배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adorare(예배하다)' 라는 단어의 어원적 의미, 곧 ados, 하느님과 우리의 존재가 마주하는 영성적 체험으로써, 그리고 성령을 통해 하느님과 친교함으로써 하느님을 예배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에서 자크 드라포르트 신부 지음 / 이창영·바오로 신부 옮김 / 가톨릭출판사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