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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세 가지 눈이 필요합니다 /전교가르멜수녀원기도학교

뚜르(Tours) 2008. 1. 30. 15:47
우리에게는 세 가지 눈이 필요합니다
 
복음 마르코 4,1-20

그때에 예수님께서 다시 호숫가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너무 많은 군중이 모여들어, 그분께서는 호수에 있는 배에 올라앉으시고 군중은 모두 호숫가 뭍에 그대로 있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비유로 가르치셨다. 그렇게 가르치시면서 말씀하셨다.
 “자, 들어 보아라.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그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은 길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다.  어떤 것은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다. 흙이 깊지 않아 싹은 곧 돋아났지만, 해가 솟아오르자 타고 말았다. 뿌리가 없어서 말라 버린 것이다.  또 어떤 것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는데, 가시덤불이 자라면서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  그러나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싹이 나고 자라서 열매를 맺었다. 그리하여 어떤 것은 서른 배, 어떤 것은 예순 배, 어떤 것은 백 배의 열매를 맺었다.”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말씀하셨다.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예수님께서 혼자 계실 때, 그분 둘레에 있던 이들이 열두 제자와 함께 와서 비유들의 뜻을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에게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가 주어졌지만, 저 바깥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그저 비유로만 다가간다.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듣고 또 들어도 깨닫지 못하여, 저들이 돌아와 용서받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또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이 비유를 알아듣지 못하겠느냐? 그러면서 어떻게 모든 비유를 깨달을 수 있겠느냐?
 씨 뿌리는 사람은 실상 말씀을 뿌리는 것이다. 말씀이 길에 뿌려지는 것은 이러한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들이 말씀을 들으면 곧바로 사탄이 와서 그들 안에 뿌려진 말씀을 앗아 가 버린다.  그리고 말씀이 돌밭에 뿌려지는 것은 이러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말씀을 들으면 곧 기쁘게 받는다.  그러나 그들에게 뿌리가 없어서 오래가지 못한다. 그래서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곧 걸려 넘어지고 만다. 말씀이 가시덤불 속에 뿌려지는 것은 또 다른 사람들이다. 이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과 그 밖의 여러 가지 욕심이 들어가, 그 말씀의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한다.  그러나 말씀이 좋은 땅에 뿌려진 것은 이러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말씀을 듣고 받아들여, 어떤 이는 서른 배, 어떤 이는 예순 배, 어떤 이는 백 배의 열매를 맺는다.”




2차 대전 중 헤롤드 러셀이라는 공수부대원이 포탄에 맞아 두 팔을 잃었습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이 쓸모없다고 여기고 좌절에 빠졌지요.

어느 날, 한 의사가 그에게 의수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는 이 의수를 통해서 자신도 할 일이 있다는 것을 특히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해요. 그래서 팔이 저리고 아픈 상황에서도 열심히 글을 썼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영화화되었고, 그는 그 영화에 직접 출연하기까지 합니다. 최선을 다해 연기한 끝에 결국 아카데미 주연상을 거머쥐는 영광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어떤 기자가 그를 찾아와 물었습니다.

“당신의 신체적인 조건 때문에 절망하지 않았습니까?”

이에 러셀은 환하게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나의 신체적인 장애가 오히려 오늘날의 영광을 만들어 주었으니, 내게는 큰 축복입니다. 잃어버린 것을 계산하지 않고, 나에게 남아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잃은 것의 열 배는 보상받을 수 있습니다. 잃어버린 것에만 신경을 쓴다면 절망밖에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희망의 마음만 있다면 우리들은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내가 잃어버린 것에 대한 절망의 마음 때문에 우리들은 스스로 행복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긍정적인 마음이야말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행복을 받아 누릴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말씀을 해주시지요. 씨가 길에, 돌밭에, 가시덤불 속에, 그리고 마지막으로 좋은 땅에 떨어졌습니다. 과연 어디에 떨어진 씨가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요? 당연히 좋은 땅에 떨어진 씨가 서른 배, 예순 배, 백배의 열매를 맺을 수가 있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시면서, 당신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사람이 바로 그러한 사람이라고 하십니다.

내 마음이 예수님의 말씀을 잘 받아들이는 좋은 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인데요. 그 마음은 부정적이고 절망적인 마음으로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 언제나 감사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희망의 마음이 있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이러한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두 사람의 세일즈맨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프리카로 신발을 수출할 목적으로 출장을 갔습니다. 그런데 정작 아프리카에 도착한 두 세일즈맨은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모두 신발을 신지 않고 맨발로 다녔던 것이지요. 두 세일즈맨은 아프리카 곳곳을 방문한 뒤 본사로 보고서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두 세일즈맨의 시선이 각각 달랐습니다.

한 세일즈맨은 이렇게 보고했습니다.

“아프리카에 신발을 수출하는 일은 가능성이 0퍼센트입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모두 맨발로 다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른 세일즈맨은 이렇게 보고서를 보냈습니다.

“아프리카에 신발을 수출하는 일은 가능성이 100퍼센트입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모두 맨발로 다니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일을 두고도 누군가에게는 실현이 가능한 일이고, 누군가에게는 실현이 불가능한 일로 보이는 법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과연 어느 쪽인지요?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희망으로 다가오시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예수님과 함께 하고자 노력하는 사람은 그 희망을 간직하고 기쁘게 그리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바로 그러한 사람이 오늘 복음에 나오는 ‘좋은 땅’에 해당한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그 좋은 땅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생활해야겠습니다. 그래야 서른 배, 예순 배, 백배의 열매를 맺을 테니까요.



예수님의 말씀 안에서 희망을 간직하도록 하세요.



우리에게는 세 가지 눈이 필요합니다(‘좋은 글’ 중에서)

첫째는 자기를 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
내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둘째는 남을 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다른 사람이 내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가를 알고,
자기중심을 잃지 않으면서...
그들과 조화를 이루어나갈 때
건강한 인간관계가 형성됩니다.

셋째는 세상을 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이 세상은 지금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가?
나는 이 세상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보는 눈입니다.

개인이 속해 있는 사회 전체가
성장하지 않는 한 개인의 성장은 한계가 있습니다.
자기 자신과 남을 보는 지혜로운 눈을 가진 사람은
자신이 속한 사회 전체를 통찰하는
눈을 갖기 위해 노력하게 됩니다.

그런 눈이 생겼을 때 자신이 속한 사회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의지라
힘을 기를 수 있습니다.

먼저 나를 보고,
그 다음 다른 사람들을 보고,
더 나아가서 자신이 속한 사회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질 때
이상과 현실이 조화를 이루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 세 가지 눈이 있는 사람의 두 발은
현실을 단단하게 딛고,
그의 머리와 가슴은 이상을 향하여
움직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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