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말 단국대 장충식 총장이 국어학의 기둥이었던 일석(一石) 이희승 박사를 찾아갔습니다. 장 총장은 대학 때 일석의 수업을 감명 깊게 들었다면서, “동양학연구소를 세워 단국대의 대표적 연구소로 키우고 싶은데 10년 동안 기틀을 잡아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일석은 “내가 가면 장 총장이 곤란해진다”며 완곡히 거절합니다. 일석은 성균관대 대학원장 때 ‘3선개헌’에 반대했다가 자리에서 물러났기 때문에 제자가 자신을 영입해 곤란해지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장 총장은 삼고초려하며 물러서지 않았고 일석은 제자의 열정에 두 손을 듭니다. 장 총장은 ‘국보급 학자’에 대한 예우로 당시 대학교에서 가장 많은 급여를 책정했습니다. 하지만 일석은 봉급액을 듣더니 “이런 법은 없다”며 화를 냈습니다. 분수에 넘치는 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