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샘물

사목단상 /한정일 프란치스코 신부

뚜르(Tours) 2008. 9. 8. 09:12

사목단상

서울대교구성령쇄신봉사회 장년담당 한정일 신부

 

“획도 흡사 사람과 같아서 독존(獨存)하지 못하는 ‘반쪽’인 듯합니다.”

 

최근 신자분의 도움으로 서도(書道)를 익히고 있습니다. 홀로 살아가야하는 사제의 직분에 해되지 않게 할 수 있는 취미가 무엇일까를 신학교 입학 이후 근 15년간 고민해왔습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좋아했던 바둑을, 취미를 고민하기 시작한 그 때에 버렸습니다. 바둑을 한 판 두려면 정신을 집중하여 소비해야하는 시간이 최소 몇 십 분이고 또한 바둑은 전쟁이여서 승부를 가릴 상대, 즉 나 이외의 또 다른 한 사람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언제든지 자리를 털고 일어나야하고 마지막 날까지 홀로 살아가야하는 사제직분에 바둑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테니스도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악기를 하나쯤은 다룰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 기타를 열심히 배웠습니다. 그러다가 ‘다행히 흰머리 지긋하게 나이가 들만큼 살게 되었을 때 그 나이의 사제가 기타를 튕기는 모습이 과연 어울리는 일일까?’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제는 홀로 살아가지만 신자들은 사제를 바라보며 신앙을 키운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기 때문에 좋아했던 기타 역시 내려두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녹차의 향에 마음에 끌리어 다도에 관심을 두었는데 점차 맛을 잃어가는 내 혀를 발견하고는 놀라 부랴부랴 자리를 털고 일어나기도 하였습니다. 녹차라는 것이 그 종류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대작, 중작, 세작, 우전 등에 따라 맛이 다르고 또 가장 좋다는 우전도 서로 맛이 다른데 맛이 더 좋은 것을 찾다보면 결국 그 값이 사제의 삶에는 어울리지 않는 수준까지 높이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좋은 차에 혀가 익숙해지면 그보다 못한 것의 맛은 잃게 되는, 그리고 내 모습이 이미 그렇게 되어있다는 것에 무척이나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낚시와 등산, 이것들은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지만 낚시도구와 등산장비를 구입하는 데에 있어서 점점 더 좋은 것을 찾게 되고 또 그것들의 가격이 낮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고서는 그만두기도 했습니다. 물론 간편한 복장으로 간편한 장비로 그것들을 할 수 있었지만 일생의 취미를 찾고 있던, 그래서 너무나도 예민해있던 당시의 나는 그것들 역시 선택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저런 많은 이유로 취미를 갖지 못하며 오랫동안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몇 달 전 선택한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서도(書道)입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 하느님을 향하는 내게 방해가 된다면 주저 없이 던져버리겠지만 지금 저는 제 선택에 큰 만족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서도(書道)와 관련된 좋은 글귀가 있어 이를 소개하려 합니다. 교회도 조직이고 사제도 조직을 통하여 사목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이런저런 회의에 참석해야 하는데, 많은 회의를 참석하면서 그리고 그 안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대하면서 다음의 글귀를 떠올리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 일껏 붓을 가누어 조신해 그은 획(劃)이 그만 비뚤어져 버린 때, 저는 우선 그 부근의 다른 획의 위치나 모양을 바꾸어서 그 실패를 구하려 합니다. 이것은 물론 지우거나 개칠(改漆)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상 획의 성패(成敗)란 획 그 자체에 있지 않고 획과 획의 ‘관계’ 속에 있다고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획이 다른 획을 만나지 않고 어찌 제 혼자서 ‘자(字)’가 될 수 있겠습니까. 획도 흡사 사람과 같아서 독존(獨存)하지 못하는 ‘반쪽’인 듯합니다. 마찬가지로 한 ‘자(字)’가 잘못된 때는 그 다음 자 또는 그 다음 자로써 그 결함을 보상하려고 합니다. 또 한 ‘행(行)’의 잘못은 다른 행의 배려로써, 한 ‘연(聯)’의 실수는 다른 연의 구성으로써 감싸려 합니다. 그리하여 어쩌면 잘못과 실수의 누적으로 이루어진 - 실패와 보상과 결함과 사과와 노력들이 점철된, 그러기에 더 애착이 가는 한 폭의 글을 얻게 됩니다. 이렇게 얻은 한 폭의 글은, ······ 여러 가지 형태로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고 양보하며 실수와 결함을 감싸주며 간신히 이룩한 성취입니다. ······획(劃)과 획 간(間)에, 자(字)와 자 간에 붓을 세우듯이, 저는 묵을 갈 적마다 인(人)과 인(人) 간의 그 뜨거운 ‘연계’ 위에 서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