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이상들을 실현할 수 있는 틀
2-5. 영적 삶에서의 현실주의
존 타울러는 한 설교 중에,
하느님이 우리의 영혼을 찾으시는 것은 복음의 비유에 나오는 것처럼
여인이 잃어버린 은화를 찾기 위해 온 집 안을 뒤집어엎는 것과 같다고 했다.
우리의 영적인 삶을 이렇듯 ‘뒤집어 놓는 것’은 성장을 위해 필수적이다.
그것이 없다면 우리는 영적인 완전함에 대한 환상을 품은 채 편안히 안주할 것이기 때문이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이것을 수동적인 정화를 뜻하는 ‘어두운 밤’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느님과 그분의 일에 대해 갖고 있던 인간적인 관점들을 버리게 되고 사막으로 인도되어 그곳에서 빵만으로 살지 않고 오직 하느님만이 주실 수 있는 양식으로 자라나게 된다.
현대 신학자들은 그리스도교적 거룩함이 완전한 성숙에 이르기 위해 수동적이며 신비적인 정화가 필요한 것인가 하는 문제로 오랫동안 공방을 벌였다.
여기서 양측의 공방내용을 굳이 거론할 필요는 없다.
단지 진정한 거룩함이란 우리 삶 안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온전히 표출하는 것이고
이 십자가는 우리에게 익숙하고 정상적이라 여겨지는 것들의 죽음이며, 새로운 차원을 살아가기 위하여 매일 일상의 자신을 죽이는 것이라고 알고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본다. 그런데 역설적인 것은, 이 새로운 차원의 삶이 우리가 매일 경험하고 있는 본래의 자아를 되찾게 해준다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고 부활하는 것은 내가 잘 알고 있는 나 자신이다.
‘새로운 인간’으로 완전히 변화되기는 했지만, 나는 여전히 같은 사람이다.
나는 영적으로 변했고 하늘의 아버지는 나를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게 되었다(divinized).”라고 인정해 주실 것이다.
이 사실은 우리가 만족하지 못하거나 역겨운 자신의 모습으로부터 도망치게 만드는
‘이상들’을 간직하는 것이 쓸데없다는 것을 말해 준다.
완전해지려면 도피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자신을 직시하고 있는 그대로의 우리 삶에 대해 온전히 책임지며,
그 모든 장애와 한계에도 불구하고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정화와 변화의 손길에
자신을 온전히 의탁함으로써만이 성인이 될 수 있다.
이런 기본적인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선한 의도를 지니고 있지만 잘못 인도되고 있는 많은 젊은이들이 절망과 파멸에 이르는 것을 봐야 한다는 것은 비극이다. 그런 젊은이들은 일단 종교적 헌신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본다. 그들이야말로 어떤 면에서는, 완전함을 제일 갈구하는 이들처럼 보인다.
자신이 스스로에게 씌운 철창을 부수려는 진지함과 열성은 그들을 도우려는 사람들의 연민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가끔 영적 지도자들은 이 불쌍한 수난자들이 현실을 직시하도록 하는 대신
모든 문제의 원천이 되고 있는 거짓 이상을 고무시키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간혹 겸손으로 오인되기도 하는 자신에 대한 병적인 증오심은 유익하지 않다.
육신과 물질적인 것들에 대한 마니교도적 미움으로 얼룩진 영적인 이상은 희망이 없다.
유치한 자아 사랑을 개량한 천사주의 역시 우리를 영적인 자유나 거룩함으로 이끌 수 없다.
우리는 자신의 격정을 다스리기 위하여 투쟁해야만 하고 깊은 겸손과 극기 안에서
우리의 영을 고요하게 하기 위하여 자신의 터무니없는 욕구에 대해서는 분명하고 단호하게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때로는 수련을 위해 자신의 정당한 욕구마저 희생해야 한다.
타협 없이 우리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고 세상을 끊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희생과 기도 그리고 세속에 대한 거부를 포함한 완전함에 이르는 길을 묵상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우리 안에 계신 하느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우리는 실제로 단식하고 기도하며 자신을 부인하고 내적인 인간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완전함이 실질적인 작업에 의해서,
다시 말해 순명에 의해 우리에게 부과된 의무들과 규칙들을 준수하는 것 그 자체로 우리의 삶 전체를 그리스도 안에서 능히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말아야 한다.
하느님을 위해 단순히 외적으로 ‘일하는’ 사람은
진정한 완전함을 이루는 데 필요한 내적인 사랑이 결핍되어 있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사랑은 주님을 위해 봉사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분을 알려 하고 기도 안에서 그분과 대화하며
관상 속에서 자신을 그분께 봉헌하기 위하여 애쓰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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