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 드라마, 스릴러
감독/주연: 클린트 이스트우드 (월트 코워스키 역)
배우 1: 크리스토퍼 칼리 (신부 역)
배우 2: 비 뱅 (타우 뱅 로 역)
배우 3: 애니 허 (수<Sue> 로 역)
올해 나를 두 번 울린 영화가 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주연과 감독을 겸해 제작한 “그랜 토리노(Gran Torino)”가 그 영화다.
이 영화는 순정을 그린 영화가 아니다. 전쟁이나 인간의 비정함을 통해 그려진 인간애를 그린 처절한 영화도 아니다. 그렇다고 또 훈훈한 인간미를 그린 영화도 아니다. 그런데도 두 번의 영화 관람을 통해 두 번의 눈물을 흘렸다는 것은 영화를 통해 느낄 수 있는 감성적 강도가 얼마나 파워풀했는지 잘 말해준다.
영화의 첫 관람은 지난 1월 유니버설 스튜디오 영화관에서 봤다. 별 생각 없이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좋아하는 까닭에 습관적으로 본 것이다. 그랬는데 영화를 관람하면서 간간하면서 줄기차게 웃음을 선사하는 게 나를 영화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었고 최면에 걸리게 했다.
남에게 언제나 얼음장 같이 냉소적(cynical)이면서도 절대 남에게는 폐를 끼칠 줄 모르는 한국전쟁 참전용사, 그는 한국전 참전에 대한 추억을 자랑스럽게 가슴 속 깊이 간직하고 기회만 생기면 한국전쟁의 참상과 홀로만 살아나올 수 있었던 전투를 되새기는 노병이다. 시니컬한 사람의 말투는 항상 각(角)이 선 경우가 많은데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그런 역을 훌륭히 보여주고, 또 스토리 소재가 이렇게 단순 평범한 게 나의 최고영화 컬렉션에 들어서게 할 줄 꿈에도 생각 못해 나는 놀랐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월트 코워스키)는 기분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는 말을 F__K로 시작해 F__K로 끝을 낸다. 예쁘고 귀여운 여자로 나오는 수(Sue)도 뱉어내는 험한 욕이 예사롭지 않다. 의외로 터프하다. 갱단 멤버들은 더한다. 욕설이 시시각각 난무한다. 하지만 영화에 대한 반감은 없다. 오히려 웃음만 나오게 한다. 꼭 한국영화 “공공의 적 2”에서 강철중이 C _al 이라는 욕설을 난무하는 것과 같은 말투와 비슷한 면이 많다. 그래서 그런지 반감보다 귀엽다는 생각이 들고 그런 장면에 관객은 최면에 걸린다.
나를 비롯해 다른 관람객들은 웃음을 참지 못해 여러 번 폭소를 터트렸고, 폭소가 안 나오면 계속 입가에 웃음을 터트리기 직전의 미소를 띠게 만들곤 했다.
개고기는 안 먹고 고양이 고기만 먹는다는 ‘몽’족의 식(食)문화, 남에게 은혜를 받았으면 풍성한 음식과 선물로 은혜를 베푼 이에게 은혜를 돌려주는 풍습, 또 배가 불러 더 이상 음식을 취할 수 없어도 계속 더 먹으라고 음식을 접시에 담아주는 모습, 그 집 아들이 공부에 취미가 없고 말썽만 피워 그 아들에 대한 인성교육과 같은 인간애를 별 꾸임 없이 보여주는데 영화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끝이지 않는다:
‘기막힌 영화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최고의 예술적 영화인으로 저렇게 변모되어 가는구나.....’
영화는 처음부터 거의 끝까지 변함없이 웃음을 제공하며 간간히 가벼운 심각 모드를 보인다. 그러다 막바지에 들어서면서 살벌한 심각 모드로 바뀐다. 관람객으로 하여금 얼굴에서의 미소가 서서히 사라지게 만들며 손에 땀을 쥐게 하고,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이렇게 전개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비록 자기의 애마와 같은 자동차 1972년형 포드 “그랜 토리노”를 훔치려 했지만 증오가 애정으로 변해 한 마이노리티(minority)의 말썽쟁이 유색인종 국(gook: 동양인 비하 은어)에 대한 사랑을 특별히 다진다. 그를 갱단으로부터 구원해 창창히 남은 인생의 미래에 대한 꿈을 일궈주고자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모종의 계획을 세우고 문제아의 주인공 ‘타우’를 불러 자기 집 지하실에 감금시키고 갱단의 거주/아지트로 찾아간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깜깜한 밤에 갱단과 대치하고 경계심에 가득 찬 갱단의 반응은 예상대로 총부리를 겨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1960년대 그의 서부영화에서 보여준 모습의 총잡이 포즈를 취하고 결투 모드를 보인다. 한 손이 담배를 꺼내고 입에 문다. 갱단에게 라이터가 있냐고 묻고 예상한 듯 라이터 불을 못 받으니 잠바 안주머니로 손이 서서히 옮긴다. 그리고 손을 꺼내는 순간 갱단은 총이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 무차별 사격을 가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갈대가 한 칼의 휘둘림에 잘려져 땅에 쓰러지듯 잔디위에 고꾸라진다. 순간 손에 있어야 할 총은 없다. 맥박이 멈추고 손이 펴지며 라이터가 보인다. 1951년 한국전쟁 참전 때부터 사용한 구식 클래식 라이터다. 전쟁의 격렬한 전투에서도 모든 전우가 죽고 혼자 살아나왔는데도 칠순의 노병이 수십 년 후 홈타운에서 갱단의 총탄에 무참히 죽는다는 사실에 슬픔은 더해진다. 그러나 이 죽음 헛된 죽음이 되지 않는다. 이 죽음으로 말미암에 갱단은 감옥에 가고 어린 새싹의 타우는 어둠의 미래에서 밝은 미래가 보장된다.
귀 따가운 총성음은 잠들고 애도의 저음과 슬로우 템포의 음악을 흘린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친아들 카일 이스트우드(Kyle Eastwood)의 음악 효과다). 차분한 분위기의 멜로디가 심장을 파고든다. 순간 타우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그렇게 애지중지하는 ‘그랜 토리노’차에 여자 친구를 태우고 나타나고, 영화에 “그랜 토리노” 제목이 붙여진 이유가 빛을 발한다.
순간 극장 안의 사방에서 여자들의 눈물과 흐느낌 소리가 들린다. 남자의 잔잔한 흐느낌 소리는 입을 묵직하게 닫음으로서 잘 안 들리지만 손이 눈으로 올라가는 모습이 보인다. 나 역시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오는 데 그 눈물의 줄기가 너무 세찼다. 영화가 끝난 후 캐스팅 된 배우 이름과 영화제작에 관여한 이름이 나오는 것을 봐야하는데 눈물로 인해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눈물을 닦으면서 볼 수 있었지만 창피한 마음이 앞서 그럴 수 없어 화장실로 발 빠른 걸음으로 옮겼다.
화장실에 들어서는 순간 마지막 장면이 머리에 또 떠오른다. 그 순간 참고 참았던 슬픔이 터지고 만다. 눈물샘이 터진 정도를 넘어 콧물이 주르륵 나온다. “억~”하며 나는 코를 막고 얼른 수돗물로 자리를 옮겼다. 세수를 하고 코를 풀고 또 다시 세수하고 얼굴을 닦았다. 영화를 보면서 이런 경험 난생 처음이다.
“그랜 토리노”는 포드 자동차의 한 모델이다. 이 차의 사회적 당시 위상과 인지도는 지금 현재 한국에서의 아반떼 정도. 당시 일본차는 장난감 차로 알아주었고 미국인이 일본차를 타고 다니면 조롱을 받았을 때다. 1972년형 그랜 토리노는 6기통의 4,100cc 엔진을 장착한 차로부터 8기통의 7,000cc 엔진을 장착한 6개의 엔진 라인업으로 구성 제작되어 대당 약 2,800-3,100달러 선에서 판매됐다.
영화에서의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포드자동차 조립공장에서 약 50년 일했고 영화에 나오는 차를 직접 조립했다고 말한다. 조립부분은 조향장치대(steering wheel column) 부분. 이 차와 미국자동차산업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때문에 아들이 일본차 토요다 “크루저” SUV를 타고 다니며 아버지가 혼자 사는 단독주택을 처분하고 대신 실버타운으로 이사하도록 종용하는 데에 대한 불만이 많다. 첫째는 아들이 아버지의 사후 유산을 노리는 게 역겹고, 둘째는 미국산업의 프라이드인 자동차산업을 망하게 한 일본차를 타고 다닌다는 사실에 있다.
주인공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죽으면서 이 차를 유언장에 16살의 ‘타우’에게 남긴다. 아들과 손녀딸에게 남기지 않고 피한방울 섞이지 않는 타우에게 남겼다는 사실은 얼음장의 시니컬한 주인공의 마음은 실상 따스함이 가득한 정이 깊은 노인임을 말해준다.
더 나아가 영화의 일상대화가 F__K과 같은 거친 언행으로 시작해 똑같은 말로 끝을 보이지만 영화가 소수민족에 대한 이해 증진과 휴머니즘의 깊이도 남다름이 있음이 보여진다. 의도적인 것 보단 엑시덴탈(accidental) 스토리로 연출된다. 이런 구성이 절묘하게 전개 돼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 중 가장 훌륭한 영화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생각까지 들게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잘 만들어진 영화가 왜 오스카상을 탈 수 없었을까?
“Politically Incorrect." 즉 사회의 정서적 측면의 정치적 콘텐츠가 미국주류사회가 아직 걸맞지 않다는 면이 있고 오스카상으로 인한 몽(Hmong) 소수민족에 대한 사회적 파장도 의식해 심사위원들도 이 영화를 좋아했으면서도 상을 주기 위한 투표에서는 인색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디까지나 나의 개인적 생각이다.)
비 뱅, 클린트 이스트우드, 애니 허
이 글을 쓰기 위해 어제 2달 만에 다시 이 영화를 또 봤다. 한국전쟁을 말하는 “Korean War"에 대한 언급을 그렇게 자랑스럽게 말하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말이 몇 번 나오는지 숫자를 네 번까지 세어봤다. 그러다 나는 깊은 최면에 또 걸렸다. 숫자 세는 것을 잊었다. 처음 관람 시 눈물 콧물을 흘렸던 관계로 두 번째엔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하에 영화에 몰두했는데도 이도 나의 바램을 무참히 깨고 말았다. 두 번째 관람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나의 눈엔 두 갈래의 물줄기가 조용히 주르르 흘러내렸던 것이다.
이제 나의 사전엔 “책 읽어주는 남자(The Reader)”와 “그랜 토리노(Gran Torino)”가 작년에 만들어지고 올해 관람한 최고의 영화가 됐다.
Written by cacomfort.
P.S.
언어 장벽으로 인해 “그랜 토리노”가 한국관객에게 얼마나 많은 웃음을 선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고유 언어에서만 갖는 미묘한 감정까지 번역이 불가능하기 때문이지요.
오스카의 픽처상을 획득한 “슬럼도그 밀리언에어”가 작년 11월12일에 개봉했음에도 박스오피스 수입은 오늘 현재 (미국시간 3월19일) 1억3천200만 달러. 남우주연 오스카상을 획득한 “밀크”는 작년 11월26일에 개봉되어 겨우 3천200만 달러의 수입을 올렸습니다. 여우주연상을 획득한 “책을 읽어주는 남자(The Reader)"도 12월12일 개봉되어 약 3천100만 달러의 흥행수입에 불과하지요. 반면 오스카상과 무관하고 또 오스카상 수상작 ”슬럼도그 밀리언에어“보다 1달 늦게 개봉된 ”그랜 토리노“는 박스오피스 수입이 1억4천3백만 달러에 육박하는 상황이네요. 아직도 1,100 여개의 스크린에서 상영하고 있어 2억 달러의 흥행수입도 어렵지 않다고 볼 수 있어 저예산 제작비로 만들어진 ”그랜 토리노“는 대박을 터트린 영화가 되었습니다.
'웃으면 복이 와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Gloomy Sunday - Ein Lied von Liebe und Tod(삶과 죽음의 노래) (0) | 2009.10.21 |
---|---|
Shenandoah River (0) | 2009.05.16 |
Laughter;The Best Medicine!(18)/아이들과 학생에 관한 유머 (0) | 2009.01.29 |
Casablanca (0) | 2008.12.13 |
갈매기의 꿈 (0) | 2008.1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