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머튼

[스크랩] 토마스 머튼, 홀로 있음에서 타자에게로

뚜르(Tours) 2010. 4. 25. 15:16

토마스 머튼, 홀로 있음에서 타자에게로
[토마스 머튼 읽기 -2]

홀로있는다는 것

토마스 머튼은 수도원에서도 평화란 무엇인가? 정의란 무엇인가? 사랑이란 무엇인가? 질문했다. 이 혼란스런 세상에서 내가 설 곳은 어디인가? 물었다. 그는 26 년 동안 수도원에서 침묵 속에 살면서 글을 통해 자기 자신의 내면을 비추는 리포터로 살았을뿐 아니라 세계를 관찰하는 리포터로 살았다. 다른 점이있다면 복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았다는 점이다.

그는 수도원에서 수많은 편지와 일기를 빼고서도 35 권 이상의 책을 썼다. 일기는 1942 년 -1954 년까지 쓴 "요나의 표징", 그리고 1956에서 1965 사이까지 쓴 "죄많은 방관자의 억측"이있다. "요나의 표징"은 홀로 있음에 관한 글이며, "죄많은 방관자의 억측"은 세상과 인간에 대한 연대감에 대해 묵상했다. 이처럼 머튼은 자신의 고독을 발견하고 나서야 자기 세계를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있었다.

"칠층산"을 출간하고 나서 갑자기 명성을 얻은 토마스 머튼은 계속 글을 써야했으며, 누구보다 바쁘고 쉴 틈이 없었고, 소란스런 상황에 접하게되었다. 1940 년에서 1950 년 사이에 수도원의 수도자 수는 몇 배로 불었다. 이를두고 머튼은 "위해 세워진 건물에 처박혔다"고 "요나의 표적"에 적었다과 홀로 있음을 사랑하는 270 명의 수도자들이 70 명을 침묵.

그것은 결국 새로운 훈련 과정, 새로운 건물, 새로운 재단 설립, 대화와 논쟁, 토론과 강의, 많은 트랙터와 불도저들, 분주한 수도자들의 들고 남을 의미했다. 그래서 본인이 정말 순수한 관상적 삶으로 부르심을받은 것인지 의심했다. 그럼에도 수도 원장과 영적 멘토는 그에게 더 많은 글을 쓰라고 격려했다. 이 과정에서 홀로 있음에 대한 자신의 갈망이 혹시 자기 편의 주 의나 자기 본위의 욕망이 아닌지 묻기 시작했다. 결국 그는 "관상을 위해 사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오직 하느님을 위해 사는 것이 중요하다"결론을 내렸다 고.

머튼 침묵에 대해 이렇게 썼다.

   
침묵은 양선 함입니다.
마음이 상했지만 답변하지 않았을 때
내 권리를 주장하지 않았을 때
내 명예에 대한 방어를 온전히 하느님께 내 맡길 때
바로 침묵은 양선 함입니다.

침묵은 자비입니다.
형제들의 탓을 드러내지 않을 때
지난 과거를 들추지 않고 용서할 때
판단하지 않고 용서할 때
바로 침묵은 자비입니다.

침묵은 인내입니다.
불평없이 고통을 당할 때
인간의 위로를 찾지 않을 때
서두르지 않고

씨가 천천히 싹트는 것을 기다릴 때
바로 침묵은 인내입니다.

침묵은 겸손입니다.
형제들이 유명해지도록 입을 다물 때
하느님의 능력의 선물이 감추어 졌을 때
내 행동이 나쁘게 평가 되든 어떻든 내버려둘 때
바로 침묵은 겸손입니다.

침묵은 신앙입니다.
그 분이 행하도록 침묵할 때
주님의 현존에 있기 위해 세상 소리와 소음을 피할 때
그 분이 아는 것만으로 충분할 때
인간의 이해를 찾지 않을 때
바로 침묵은 신앙입니다.

침묵은 흠숭입니다.
왜라고 묻지 않고
십자가를 포옹할 때
바로 침묵은 흠숭입니다.

그 분만이
내 마음을 이해하시면 족하기에
인간의 이해를 찾지 않고
그 분의 위로를 갈망할 때
십자가의 침묵처럼
잠잠히 그 분의 뜻 모든 것을 맡길 때에
침묵은기도입니다.

머튼에게 글쓰기는 거룩함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었다 

   
실상 고독은 그 자신의 마음이 홀로일 수있다면 소박한 일상에서도 언제든지 가능하다는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오늘 나는 홀로 있음 이야말로 나를 향하신 하느님의 뜻이며, 나를 사막으로 부르시는 분이 하느님 이심을 확신할 수있게 된 것 같다. 그러나이 사막이 꼭 지리적인 좌표일 필요는 없다. 그것은 다만 인위적인 기쁨이 소멸되고 하느님 안에서 재탄생하는 마음의 고독이다 "(요나의 기적, 59)

그러나 한편 으론 여전히 절대 고독에 대한 갈망으로 카르 투 지오 수도원으로 옮기고 싶은 유혹을 받았다. 그러나 이내 그 생각을 접고, 글쓰기 역시 핸디캡이 아니라 참다운 침묵과 홀로 있음으로 들어가는 입구로 알아듣기 시작했다. 글쓰기는 머튼에게 거룩함으로 이르는 유일한 길이 된 것이다. 그는 "만일 성인이 되려한다면 나 자신이 무엇이되었는지 종이에 옮겨야하고 ... 완전한 단순 성과 성실 성으로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아무 것도 숨기지 말아야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머튼은 글쓰기를 통해 자기 자신의 내밀한 감정과 생각들을 공적인 자산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다른 이들이 수도원의 침묵 속으로 침투해 들어오는 것을 허락했다. 자기 자신을 자신의 내적 삶의 리포터를 삼음으로써 이렇게 감정과 생각 마저 제 소유로 여기지 않고 비워 냈을 때 모든 것이 제게 속한 것임도 깨달았다. 공기와 나무, 전 세계가 하느님을 노래하고, 발 아래 땅에서 불과 음악을 감지할 수 있었다. 창조 세계의 아름다움은 그를 가난하게도하고 풍요롭게도했으며, 평화와 행복을 안겨주었다.

1951 년 5 월 학생들을 돌보는 영적 지도자 (수련장)가되면서 머튼은 새로운 사막을 발견했다. 그것은 '자비'라는 이름을 가졌으며, 다른 사람들의 삶 속에서 침묵을 느끼고 존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즉, 침묵을 얻자 마자 그것을 다른 이들과 나누어야한다는 열망에 사로잡혔다.

타자의 발견

   
트라 피스트 수도원 창문 턱에는 '오직 하느님 께만'이라는 구절이 새겨져있다. 토마스 머튼은 수도원의 침묵과 자연의 안식, 그리고 정기적인기도 생활에 녹아들어가 오직 하느님께 집중하기로 작정했다. 그러나 자신의 고독을 깊이있게 응시하게되면서 '사회적 고독'을 묵상하기 시작했다. 1951 년 10 년째 겟세마니 트라 피스트 수도원에 머물면서 "이제 나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삶의 빚을지고있다"것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이제 중요한 것은 '오직 하느님 께만'쏟아 부었던 열정이 정화와 고독을는 통해 '모든 사람과 더불어'가는 길이되었다.

1960 년대 들어서 미국 사회 안에서 인종 갈등이 극심 해지고, 베트남 전쟁으로 무고한 양민들이 학살되는 상황을 겪으면서, 머튼은 어둠 속에서 빛을 발견하기 위해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에게 응답할 준비를했다. 세상과 교회, 실천과 영성 사이에 통합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테면 1968 년 12 월 10 일 그가 죽던 날, 방콕에서 머튼은 '마르크스주의와 수도원주의;에 대한 강연을했다. 이날 어느 프랑스 학생 혁명 지도자가 "도 역시 수도자"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우리. 이에 머튼은 "수도자는 본질적으로 현실 세계와 그 구성체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사람을 뜻한다"동의했다 고.

관상은 근본적으로 사회적 문제이며, 침묵과 고독과기도는 개인적 자산이 아니라 함께 사는 이들과 돌보아야하는 이들에게 속한 것이라고 확신한 것이다. 머튼은 아우 슈비츠, 히로시마, 베트남 등의 실상이 사실은 자신의 깊은 곳에도 도사리고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러니 먼저 내 안의 파시즘을 척결해야할 필요가 있었다.

한편 머튼은 수도자들이 세상에 대한 경멸의 외투 아래 복음이 명령하는 요청을 거절하고있다는 것을 자각했다. 수도자로서 가진 소명은 세상의 최전선에서 싸우는 것도 세상을 경멸하여 등을 돌리는 것도 아니었다. 수도자의 임무는 현실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현실을 포장한 환상의 가면을 벗기는 것이다. 이는 관상의 본질에 속한다.

   

환상의 가면을 벗기는 것은 관상의 본질이다

머튼이 환상의 가면을 벗기는 데 영향을 주었던 사람은 제임스 볼드윈과 마하 트마 간디였다. 볼드윈은 흑인 문제가 사실은 백인의 문제라고 알려주었다. 백인들이 자기들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고 파괴와 폭력의 뿌리를 바라보지 않는다면, 선한 백인들의 노력조차 일시적 감정에 그치고 언제든지 변질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에서 비폭력 운동이 좌절되고 블랙 파워 등의 과격한 운동이 기승을 부리면서, 머튼은 자기 마음 속 폭력의 흔적을 지우지 않으면 모든 게 다만 전략과 전술에 머물고 말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때에 머튼은 좀 더 깊숙한 곳에서 배어나오는 비폭력 저항의 원천을 탐색하면서, 아시아 종교심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에게 영감을 준 사람은 마하 트마 간디였다. 머튼은 "간디의 비폭력"이라는 책을 통해 소개하면서, "진리의 영은 우리에게 지금 우리의 상황이 결정적인 것이 아니며, 그 속에 선을 향한 회심의 가능성이 내포되어있다"고 말한다.

만약 폭력적 상황을 연출하는 것이 불가 역적이고 가시적이며 윤곽이 뚜렷한 종양이라면 방법은 그것을 잘라내는 것 뿐이다. 그러나 악이 되돌릴 수 있고 용서를 통해 선으로 바뀔 수있다면 비폭력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머튼은 그리스도를 통해 용서가 가능하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비폭력은 하나의 가능성이 아니라 그리스도 인의 필요 조건이라고 확신했다.

"영적 자유의 최고 형태는 피억압자와 억압자를 동시에 해방하는 마음의 힘에서 찾을 수있다. 피억압자는 자신으로부터 해방될 수있을 때 비로소 자신을 억압하는 사람을 긍휼히 여길 수있는 힘을 얻게된다."(간디 의 비폭력, 14-15)

머튼에게 새로운 사막으로 등장한 하느님의 자비는 연대의 체험에서 나왔으며, 이런 체험을 통해 우리가 세상과 다른 이들 속에서 발견하는 악과 죄와 폭력이 실은 자신의 가슴에 깊이 뿌리 내리고있는 것임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

 

(가톨릭 뉴스 지금 여기)

출처 : 세계를 읽어주는 나뭇잎숨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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