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두산 성지에서의 단상(短想)
어제 뜻 깊은 하루를 보냈습니다.
의정부 교구 마두 성당 예비신자 91명과 함께
서울 시내 네 곳의 성지를 순례했습니다.
명동 성당의 행사 때문에 명동 성당에 집결하지 못하고
오전 8시 30분에 새남터 성지에서 순례를 시작했습니다.
기념관과 대성전을 둘러 보고
오전 10시 30분 미사에 참례했습니다.
순교자 성월 첫 주일 미사이며,
새남터 성지 제13차 성지순례 개막미사였습니다.
1시간 30분 간 성수 예절과 함께 국악 미사였습니다.
아주 은혜로운 미사였습니다.
미사 중에 순례 중인 예비신자 소개가 있었습니다.
마두 성당, 신월동 성당, 성내동 성당의 순례자로
새남터 성지 대성전이 꽉 찬 느낌이었고,
이를 환영하는 모두들 기쁨이 가득했습니다.
절두산 성지 지하 성해실을 참배하고 박물관을 관람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두 번 이상 박물관을 개조했는데
많은 경비를 들여 변경한 공로도 없이
여전히 산만하고 어떤 주제가 결여된 전시회 같은 느낌입니다.
첫 입장하는 제1전시관부터 저는 불만입니다.
입구 첫 전시물이 박취득 라우렌시오 순교자의 박해 장면 그림은
역사를 거꾸로 가는 듯 합니다.
첫 영세자 이승훈 선생의 영정에 이어
정약용 선생의 영정이 전시되는 것은 도리에 어긋난다고 생각합니다.
정약용 선생의 형인 정약종 순교자가 소개되어야 할 자리가 아닐까요?
세상에서는 정약용 선생이 더 알려져 있지만,
천주교 역사 박물관에서는 정약종 순교자가 더 감동적일 것 같습니다.
순교자의 향기는 버리고 비움에 있다고 봅니다.
세상의 온갖 부귀영화와 끊을 수 없는 인간의 정과
견디기 힘든 고통을 버리고 비운 곳에
하느님의 은총으로 가득 채운 분들이 순교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런데도 한국천주교 제일의 절두산 성지 박물관은
황사영의 백서가 선종하신 주교님 제의 무늬로 남아 있고,
백서가 전하는 의미는 상실되어 있습니다.
역사는 기록이기 때문에 체계있게 정리되어야 합니다.
죽음으로 온갖 세상 영화를 버린 황사영 선생의 백서가
주교님 제의에 박혀 역사를 증거할 수 있을런지요.
예비신자들이 입장하면서
박취득 라우렌시오 순교자의 고문 장면의 그림,
이승훈 선생과 정약용 선생의 영정을 보고
강완숙 골롬바의 영정을 보고
박물관을 안내하는 봉사자들의 설명을 듣고
평신도에 의한 자발적 전교의 신비,
세계 유일의 그 신비를 이해할 수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한 단체가 입장하면 이를 처음부터 끝까지 안내하여
일관된 안내가 필요한데
이곳저곳에서 각기 전시물 설명에 열중하는
산만한 관람이었습니다.
맑은 하늘에서 천둥 번개가 치고 한줄금 소나기가 내리고
시원한 바람이 부는 절두산 성지,
한국 천주교 제일의 보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천주교 신자들이 쉬어 가고
역사를 통해 하느님의 현존을 느껴야 할 절두산 성지,
그 성지를 위해 기도한 하루였습니다.
2010. 9. 6..
9월 첫 월요일에 마르티노가
♬배경음악:Mediterranean Ey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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