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에서 경춘선을 타고 춘천에 거의 다 가면 강촌역 다음이 김유정역입니다.
예전에는 신남역이었었는데 김유정역으로 개명된 것은 이번에 처음 보았읍니다.
강촌역과 김유정역 사이에 의암이라고하는 간이역이 있었는데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것도 처음 알았읍니다.
의암역은 옷의자 바위암자를 씁니다. 순수 우리말로 '옷바우'를 한문으로 쓰다보니 의암이 되고 말았읍니다.
'옷바우'는 신연내에 있는 커다란 바위가 옷처럼 생겼다 해서 붙여진 지명입니다.
바로 그 '옷바우'가 나의 외가택이 있던 마을입니다. 어머님이 이곳에서 나서 자랐고 외가 할아버지 할머니의
산소가 있는 곳입니다.
옷바우는 신연내를 끼고 형성된 한 30호정도 모여사는 마을이었고 아래옷바우에는 50호정도 초가집이
있었읍니다.
지금은 그나마 다 사라지고 몇채 없더군요.
기차에서 내려 역사를 향해 걸어가도 역무원은 없었읍니다.
김유정역사를 지키고 있는 자는 진돗개 '금병이'뿐이었읍니다.
아무도 없는 역사에서 어떻게 개 이름은 알아냈느냐구요?
뒤에있는 개집에 그렇게 쓰여있더군요.
'금병이'는 김유정의 고향마을인 실레마을 뒤에 있는 금병산에서 따온 이름임을 금방 알수있었읍니다.
복원 해 놓은 생가.
김유정이 묘사한 고향 실레마을을 보면 얼마나 외진 시골마을인지 알수있읍니다.
"나의 고향은 저 강원도 산골이다. 춘천읍에서 한 이십리 가량 산을 끼고 꼬불꼬불 돌아 들어가면 내닷는
조그마한 마을이다. 앞뒤 좌우에 굵직굵직한 산들이 빽 둘러 섯고 그 속에 묻친 안윽한 마을이다.
그 산에 묻친 모양이 마치 움푹한 떡시루같다 하야 동명을 실레라 부른다."
김유정이 작고한게 1937년, 경춘선이 개통한게 1939년.
김유정은 경춘선이 존재하지 않던 시절의 인물입니다.
경춘선이 놓이기 전의 이야기는 나의 외할머니와 어머니를 통해서 익히 들었읍니다.
그때는 신연강에서 곡물을 싣고 가는 돛단배를 타고 마포나루까지 갔다고 하더군요.
서울로 유학 간 학생들이 몇명 되지는 않았지만 그들도 배를 타고 가야만 했답니다.
여름방학을 하면 마포에서 새우젓을 싣고 오는 배를 타고 고향에 왔다고 하더군요.
잔잔하고 고요한 강이지만 거슬러 올라가려면 쉴새없이 노를 저어야 했답니다.
배는 밤낮 없이 사나흘 걸려야 춘천에 닿았다고 하네요.
김유정도 달이 휘엉청밝은 밤에 돛단배에 걸터앉아 노젓는 물소리를 들으며 고향에 가는
그런 낭만적인 시간도 있었겠지요.
내가 실레마을을 찾은 날이 '실레마을 책 축제'날이었읍니다.
'춘천의 작가'라고 하면서 책과 작가이름을 적어 놓은 현수막이 줄비하게 걸려있는게 흥미로웠읍니다.
책 제목은 책의 얼굴이잖아요, 책방에서 제목만 보아도 시간이 훌적 가는데 이곳 현수막도 책방의 책만큼
많이 있었읍니다. 그중에서 재미있어 보이는 제목만 골랐읍니다.
'별, 외로움과 사랑의 별'- 현상언 '편지나라 우체통'- 최복형 '징조처럼 암시처럼'- 정중화
'이슬방울'- 정도경 '꿈꾸는 어부'- 변종윤 '섬같은 사람'- 선우미애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심순덕 '고봉밥'- 김동겸 '고래와 한물에서 놀았던 영혼'- 김순실
'아궁이 속에 지핀 사랑'- 김기순 '사랑, 한통화도 안되는 거리'- 김금분
'아직도 가슴 한자락 못다태운 저 불꽃'- 황정자 '손벽치며 나는 새'- 김두수 '수국이 피는 집'-김복동'
'어머니의 빈손'- 이용철 '아직은 마흔살'- 심영희
또 다른편에는 그림동화 현수막이 씨리즈로 걸려 있었읍니다.
우렁각시 김용철 글- 그림
옛날 어느 산골에 한 젊은이가 혼자 살고 있었어.
어느 날 밭에 갔다 오는 길에 혼잣말을 했지.
"이 농사를 지어서 누구하고 먹고 사나?"
그랬더니 어디서 소리가 들리지 뭐야.
"나하고 먹고 살지, 누구하고 먹고 살아."
젊은이가 다시 말했어.
"이 농사를 지어서 누구하고 먹고 사나?"
"나하고 먹고 살지, 누구하고 먹고 살아."
또 소리가 들리는 거야.
누가 그러나 하고 가 봤더니, 커다란 우렁이가 스르르 다가왔어.
젊은이는 우렁이를 집에 가져가 물동이에 넣어 두었지.
다음 날 일을 갔다 왔는데, 누군가 하얀 쌀밥을 해서 차려 놨지 뭐야.
참 희한한 일이다 하고 잘 먹었지.
그 이튼날 일을 갔다 왔는데, 또 따끈따끈하게 밥을 해서 차려 놨어.
배가 고팠으니 잘 먹었지. 참 희한도 하다, 희한한 일도 있다.
그 다음 사흘째는 몰래 숨어 지켰어, 그런데 물동이에서 털버덩털버덩하더니 예쁜 아가씨가 나타나지 뭐야.
아가씨가 밥을 하고 들어 가려고 할 때 젊은이가 뛰어나가 아가씨 허리를 꼭 껴안고 말했지.
"나하고 같이 살아요." 아가씨가 대답했어, "이틀 밤만 지나면 완전히 사람이 되니, 그때까지 기다려 주세요."
젊은이는 할수 없이 놓아 주었어. 아가씨는 우렁이가 되어서 털버덩털버덩 물동이에 들어갔지.
사흘이 되던날. 정말 우렁이가 사람이 되어서 같이 살게 됐어.
젊은이는 우렁각시가 하도 예뻐, 잠시도 집을 떠날 수 없었지.
우렁각시가 자기 얼굴을 그려 주니까 그제야 일을 하러 나갔어.
젊은이는 우렁각시 그림을 나무에 걸어 놓고서 괭이로 한 번 팍 치고 각시 얼굴 쳐다보고
괭이로 한 번 팍 치고 각시 얼굴 쳐다보고, 한 번 치고 쳐다보고, 한 번 치고 쳐다보고, 또 쳐다보고
그런데 회오리바람이 휙 불어와서 각시 얼굴 그림이 날아가 버렸어.
하필이면 우렁각시 그림이 못된 왕한테 날아갔네.
왕이 그림을 보고 말했어, "이 세상에 이렇게 예쁜 여자가 있다니."
왕은 우렁각시가 있는 곳을 알아내고, 젊은이를 불러들였어.
"나와 내기를 하자." "단숨에 큰 집을 지어서 오백 사람이 들어가 국수를 먹게 하는 거다.
네가 이기면 말 한필과 돈 천 냥을 주고, 내가 이기면 네 색시를 궁궐로 데려오겠다."
젊은이가 돌아와 낑낑 앓으니 우렁각시가 왜 그러느냐고 물었지.
"꼼짝없이 각시를 빼앗기게 됐어요." 우렁각시가 가만 듣더니 말했어.
"걱정말고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세요." "나는 용왕의 딸이예요. 내가 있던 웅덩이에 가면 잉어가 나와서
아버지가 계시는 곳에 데려다 줄 거예요. 용왕이 무엇을 줄까하시거든 북을 달라고 하세요."
젊은이는 용왕한테 가서 요술북을 얻어 갖고 왔어.
우렁각시가 말했지 "이 북을 세 번 치면 이길 거예요, 딱 세 번만 치세요."
드디어 내기가 시작됐어. 왕의 일꾼들이 와글와글 모여서 뚝딱대며 집을 지었지.
젊은이가 실컷 놀다가 일어나, 둥! 한 번 북을 치니까집 지을 나무가 반듯하게 본이 떠져서 나왔다.
둥! 또 한 번 치니까 집이 번듯하게 세워졌다. 또 한 번 둥! 치니까
오백 사람이 집 안 가득히 둘러앉아 국수를 먹네, 왕은 놀라 까무러치고, 젊은이는 신바람이 났지.
하도 좋아서 그만 한 번 더 쳐 버렸네. 둥! 치니까 없어져 버렸어.
멀쩡한 집이랑 사람들이 홀라당 없어졌지.
우렁각시는 왕한테 끌려가면서 말했어 "활쏘기 삼 년. 눈치 보기 삼 년, 뛰어넘기 삼 년, 합해서 구 년을
배우고 날 찾으러 오세요."
그때부터 젊은이는 다른 일은 안 하고 활만 쏘았지. 활을 쏘아서 새를 잡고, 새털을 모아서 새털옷을 해 입었어.
그 다음 삼 년은 이 사람 눈치를 할금할금 보고, 저 사람 눈치를 할금할금 보고,
또 그 다음 삼 년은 낮은 데 높은 데 뛰어넘기를 하고 다녔지.
마침내 우렁각시와 약속한 날이 되었어. 젊은이는 궁궐로 갔어.
젊은이는 궁궐 마당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지. 우렁각시가 젊은이를 보고 빙그레 웃었어.
왕이 말했지 "아니, 구 년 동안 한 번도 웃지 않더니 저 거지가 춤추는 게 그렇게 우스워?
내가 저걸 입고 춤을 추면 더 좋아하겠네?"
왕은 당장에 뛰어가 젊은이의 새털옷을 빼앗아 입었어.
왕이 새털옷을 입고 춤을 추고 있을 때, 우렁각시가 젊은이한테 쨍긋쨍긋 눈짓을 했어.
눈치 보기 배워서 무엇 하느냐고. 젊은이가 얼른 왕의 옷을 입었지.
우렁각시가 또 젊은이한테 쨍긋쨍긋 눈짓을 했어.
뛰어넘기 배워서 무엇 하느냐고. 젊은이는 흘쩍 뛰어넘어 왕이 앉는 의자에 앉아 소리쳤어.
"여봐라! 저기 새털옷을 입은 거지 놈을 끌어내라!"
왕은 꼼짝없이 묶여 끌려갔지.
이렇게 해서 젊은이는 우렁각시를 다시 찾고 왕 노릇 잘하면서 잘 살았대.
이번에는
'총각과 맹꽁이' 소설 속 현장 답사길로 나섰읍니다.
'봅.봄'에서 배참봉댁 마름으로 나오는 김봉필은 실레마을에서 욕필이로 통했던 실존 인물이랍니다.
그는 당시 딸만 여섯 낳아 데릴사위를 들여 부려먹기도 하고, 금병산 산림감시원으로 동네 사람들에게 두루
인심을 잃었었다네요.
점순이와 성례는 안 시켜주고 일만 부리는 장인과 주인공이 드잡이하던 현장.
한들 주막에서 술을 먹고 백두고개를 넘어오던 작가 김유정이 점순이와 혼례를 시켜주지 않는다며 싸우는
장면을 직접 목격하고 메모해 두었다가 '봄.봄'을 썼다고 합니다.
대학을 중퇴하고 고향에 내려와 '금병의숙'을 지어 야학과 농촌계몽에 나섰던 김유정.
그때 그가 심었다는 느티나무가 저렇게 자라있군요.
당시 유행했던 폐병으로 생을 마감한 스물아홉의 잛은 삶.
김유정의 고향마을 둘러 보면서 나를 가장 슬프게 한 것은 그가 친구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입니다.
필승아.
나는 날로 몸이 꺼진다.
이제 자리에서 일어나기조차 자유롭지가 못하다.
밤에는 불면증으로 하여 괴로운 시간을 원망하고 누워 있다.
그리고 맹일이다. 아무리 생각하여도 딱한 일이다.
이러다가는 안 되겠다. 달리 도리를 차리지 않으면 이 몸을 다시는 일으키기 어렵겠다.
필승아.
나는 참말로 일어나고 싶다. 지금 나는 병마와 최후의 담판이다.
홍패가 이 고비에 달려 있음을 내가 잘 안다.
나에게는 돈이 시급히 필요하다,그 돈이 없는 것이다.
필승아.
내가 돈 백 원을 만들어볼 작정이다.
동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네가 좀 조력하여 주기 바란다.
또다시 탐정소설을 번역해보고 싶다.
그 외에는 다른 길이 없는 것이다.
허니, 네가 보던 중 아주 대중화되고 흥미 있는 걸로 두어 권 보내주기 바란다.
그러면 내 50일 이내로 역하여, 너의 손으로 가게 하여주마.
하거든 네가 적극 주선하여 돈으로 바꿔서 보내다오.
필승아.
물론 이것이 무리임을 잘 안다. 무리를 하면 병을 더친다.
그러나 그 병을 위하여 무리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나의 몸이다.
그 돈이 되면 우선 닭을 한 30마리 고아먹겠다.
그리고 땅꾼을 들여 살모사, 구렁이를 10여 마리 먹어보겠다. 그래야 내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
그리고 궁둥이가 쑥쏘구리 돈을 잡아먹는다.
돈, 돈, 슬픈일이다.
필승아.
나는 지금 막다른 골목에 맞닥뜨려다.
나로 하여금 너의 팔에 의지하여 광명을 찾게 하여 다오.
나는 요즘 가끔 울고 누워 있다.
모두가 답답한 사정이다. 반가운 소식 전해다오.
기다리마.
3월 18일 김유정으로부터
사망하기 11일 전 휘문고보 동창 안회남에게 쓴 편지
편지속에서 친구의 이름을 간곡하게 5번이나 부르고 있읍니다.
돈을 빌려달라고 해도 시간이 모자를 텐데 스스로 벌어 볼테니 도와 달라고 밖에 말을 못하는
그의 여린 마음을 엿볼수 있읍니다.
그리고 기다리겠다고 했읍니다.
지금도 기다리고 있을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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