脫北기자 강철환이 본 황장엽의 '마지막 나날'
"김정일 망하는 것 그것만은 보고 가야지…" 평소 잠꼬대처럼 되새겨
“김정일보다 한심한 놈 대한민국에 많아… 햇볕정책은 反逆정책”
"김정일이 망하는 것이 눈앞에 보인다. 그것만은 보고 가야지."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는 사람들이 건강이 어떤지 물어보면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그러나 그 희망을 이루지 못하고 10일 세상을 떠났다. 황 전 비서가 오래 소망했으나 하지 못한 일은 또 있다. 중국의 옛 친구들을 찾아가 "중국은 북한과 잡은 손을 놓아야 한다"고 설득하는 일이다. 그는 "아직 때가 아니지만 언젠가는 꼭 해보고 싶다"고 했었다.
- ▲ 北에서… 1987년 소련을 방문하기 위해 평양역을 출발하는 김일성을 환송하기 위해 나온 김정일과 황장엽(빨간 점선 안) 전 북한 노동당 비서. /천리마 87년 1월호
지난 2007년 탈북자 중심단체인 북한민주화위원회가 설립돼 황 전 비서가 위원장을 맡은 후 그를 자주 만날 기회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만난 건 지난 9월 말이다. 그때만 해도 건강한 모습이었다. 지난주 황 전 비서가 이끄는 철학 모임에 참석했던 학자와 탈북자들도 그가 평소보다 밝은 모습이라 더 건강해 보였다고 했다. 황 전 비서는 서울 논현동의 북한민주화위원회 사무실에서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철학을 강의하고 토론했다. 강의와 토론은 그의 유일한 취미였다. 그는 철학에 관심 있는 사람을 특히 좋아했다.
- ▲ 1991년 중국을 방문한 김일성이 덩샤오핑 당시 중국 중앙군사위원회 주석과 만날 때 뒤에 서 있는 황장엽(빨간 점선 안) 전 비서. /연합뉴스
황 전 비서는 하루 두 번 반신욕을 하고 식사는 하루 한끼만 했다. 오리백숙 등 오리요리를 좋아했다. 그는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김정일 이야기만 나오면 분노했다. 삼남 김정은이 후계자로 공식 등장했다는 소식에, "그놈(김정일)이 얼마나 후안무치한 도적놈인가. 세상 부끄러운 것도 모르고. 그깟 놈(김정은)이 올라간다고 뭐가 제대로 되겠소? 이제 망할 날이 다가오는 것이지"라고 했다. 황 전 비서는 김정일에 대해선 늘 '그깟 놈' '도적놈' '세상에 몹쓸 패륜아'라고 했다.
- ▲ 황장엽(맨 앞줄 가운데) 전 비서가 1994년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린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9기 7차 회의에 참석한 모습. /연합뉴스
탈북자들이 북한 후계구도가 어떻게 될 거라고 생각하는지 묻자, 그는 "세 아들놈 중 큰아들 김정남이 제일 낫고 그놈이 되면 북한은 조금 오래가겠지만 다른 것들은 별것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세상이 그깟 놈들에게 관심을 갖더라도 우리는 무시하자"고 했다. 지난 9월 28일 북한 당대표자회에 김정은이 등장한 걸 보고 전화를 걸었을 때도 "그깟 놈(김정은) 나타난 게 뭐 별거요? 우린 우리대로 북한 민주화를 위해 할 일을 하면 돼요"라고 했다.
그는 북한보다 남한을 더 걱정했다. "남한이 정신 못 차려서 큰일 났다"며 한탄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특히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망하는 북한을 보며 대한민국과 통일을 논하러 왔는데 대한민국이 더 걱정된다"고 했다. "김정일보다 더 한심하고 못된 놈들이 대한민국에 많아 김정일에게 남한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걱정도 많이 했다.
- ▲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가 한국으로 망명하기 전 북한에 체류할 당시에 찍은 가족사진. /연합뉴스
그를 분노하게 만드는 또 다른 주제는 햇볕정책과 김대중·노무현 정권이었다. 그는 "김정일 체제가 지금껏 유지된 것은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문"이라면서, "햇볕정책은 북한 인민들을 더 큰 고통 속에 몰아넣고 김정일만 살린 반역정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 그는 "이제 탈북자들이 대한민국 정부와 함께 북한 민주화에 기여할 수 있는 시기가 왔다"고 의욕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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