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덕후와 박순희를 아시는지.
오덕, 혹은 덕후로도 불리는 오덕후는 오타쿠(특정 분야나 취미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사람),
박순희는 빠순이(‘오빠부대’로 불리는 소녀 팬)를 뜻하는 인터넷 조어다.
심리학자 황상민 연세대 교수는 오군과 박양이 미래소비사회의 주역으로 떠오를 거라고 내다봤다.
이들은 현실에선 비주류, 사이버 세상에선 주류다.
특징은 대세와 유행, 재미 추종.
시쳇말로 재미있으면, 남들이 몰리는 것 같으면 지른다.
대상은 ‘김연아 귀걸이’ 같은 상품부터 영화 ‘디워’ 관람 열풍, 촛불집회 같은 사회현상까지 다양하단다.
오덕후와 박순희는 팬의 다른 이름이다.
오타쿠와 빠순이는 원래 부정적 뉘앙스가 강한 말이다.
오타쿠는 자기 좋아하는 것에만 미쳐 배타적이고 현실도피적인 특징을 띤다.
빠순이에는 기획사의 전략에 놀아나 무조건적으로 스타를 추종하는 소녀들을 비하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하긴 팬의 어원도 ‘광신도’라는 뜻의 ‘fanatic’ 아니던가.
이런 어감이 다소 희석된 건 2000년대 중반 팬덤(fandom)이 등장하면서다.
팬들이 적극적으로 스타와 상품 소비에 나섬으로써 오히려 문화주체가 됐기 때문이다.
오타쿠와 빠순이로 대표되는 팬덤 현상에는 안티 팬의 등장도 포함된다.
또 다른 유형의 팬이다.
‘안티 팬도 팬’이라는 효용가치를 꿰뚫어본 사람 중 하나가 힐턴가 상속녀 패리스 힐턴이다.
일부러 ‘돈 많고 철 없는 무개념녀’ 이미지를 부추겨 안티 팬을 늘렸다.
그들이 아우성칠수록 힐턴의 사업은 패션·출판·음반 등으로 번창했다.
일찍이 문학평론가 박철화는 서태지에 대해 분석한 글에서 “서태지 팬보다 더 서태지를 사랑하는 게 ‘서태지 안티’”라고 말하기도 했다.
‘무플(댓글 없음)보다 차라리 악플(악성 댓글)이 좋은’ 디지털 사회에서 안티 팬의 역설은 두드러진다.
최근 심형래 감독의 ‘라스트 갓파더’를 둘러싼 ‘심빠(심형래 옹호)’와 ‘심까(심형래 비판)’의 설전이 좋은 예다.
비판을 하면 할수록 마케팅 효과는 상승하니 말이다.
문화평론가 진중권의 ‘불량품’ 발언이 나오자마자 포털사이트 검색어 순위 10위권에 ‘진중권, 심형래, 라스트 갓파더’ 3개가 나란히 올랐고, 영화는 열흘 만에 200만 관객을 넘보고 있다.
욕하고 싶으면 입을 다물던가 아니면 대나무숲에 가서 혼자 외치던가 하는 편이 나으려나.
그게 오덕후와 박순희의 시대, ‘빠’와 ‘까’의 시대를 사는 요령인지도 모르겠다.
기선민 / 중앙일보 문화스포츠 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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