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일 연중 제8주간 화요일-마르코 10장 28-31절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28-31
28 그때에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29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어머니나 아버지,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30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를 백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31 그런데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은 아침부터 이곳 춘천에는 많은 눈이 내렸지요, 내리는 눈이 길은 다~ 녹았지만 산에는 나무마다 아름다운 눈꽃이 피어 장관을 이룰 것같아서 오늘 묵상글을 뒤로하고 눈을 맞으며 문배마을이라는 산행을 했습니다 산을 오를수록 눈꽃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이제야 돌아와서 글을 올립니다
한 거지가 매일 천 원을 주는 신사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재작년까지 늘 만 원씩 주셨는데, 작년에는 오천 원, 그리고 올해에는 또 천 원으로 줄이셨습니다. 그 이유가 뭡니까?”
그러자 이 신사는 당연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합니다.
“전에야 내가 총각이었으니까 여유가 있었지만, 작년에 결혼을 했고, 이제는 애까지 있으니 좀 어려워서 그렇습니다.”
이 말에 거지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니, 그럼 내 돈으로 당신 가족을 부양한단 말입니까?”
글쎄요. 이 거지의 말이 맞는 것인가요? 당연히 잘못된 궤변입니다. 이 신사는 사랑의 실천으로 자신을 도와주고 있었는데, 이 거지는 신사가 주는 매일 매일의 돈이 마치 자신의 돈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들도 이 거지의 궤변을 끊임없이 내세우며 이 세상을 살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이 이 세상을 잘 살 수 있도록 얼마나 많은 은혜를 주십니까? 숨을 쉴 수 있는 산소를 주셨고, 또한 낮에 활동할 수 있도록 빛을 그리고 밤에 잠 잘 수 있는 어둠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먹을 곡식이 잘 클 수 있도록 적절한 햇빛과 빗물 역시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주시는 은혜입니다. 이처럼 따지면 얼마나 많은 은혜를 받고 있는지 모릅니다.
이런 은혜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주님께 청할 뿐입니다. 아니 청하는 것뿐만 아니라 왜 당연히 줘야 할 것을 주지 않으냐면서 불평과 불만을 던지기도 합니다.
우리들이 지금 현재 요구하는 것들은 대개 순간의 만족만을 가져올 뿐입니다. 엊그제가 새해라고 기뻐했던 것 같은데 벌써 3월의 첫날을 맞이하고 있지요. 이처럼 내가 사는 이 세상의 삶이 얼마나 짧습니까? 그런데 많은 이들이 이 짧은 세상에서만 필요한 것만을 지향하며 살 뿐입니다.
이렇게 순간의 만족을 요구하기보다는 더 큰 영원한 생명이 있는 구원의 길을 쫓아야 합니다. 이 길을 향해 가는 사람이 진정으로 주님 앞에서 첫째 자리에 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