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地巡禮

서울시내 성지순례

뚜르(Tours) 2011. 3. 7. 12:26


서울 시내 성지순례

 

 

2011년 3월 첫 주일, 6일에 서울시내 성지순례를 했습니다. 혜화동 예비신자 82명, 봉사자 8명과 함께 한 순례였습니다. 명동성당 10시 미사 참례 후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원 방문 일정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는 프랑스가 본원입니다. 조선대목구 제7대 교구장 블랑 주교님이 버려진 아이들을 돌보는 고아원을 위해 파견을 요청하셨고 1888년 7월 22일, 제물포항을 통해 네 분의 수녀님이 파견되었습니다.

 

 

수녀원 안에서 수녀님의 안내로 수녀회의 역사와 전시된 유물들에 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그 중에서 저에게 관심을 끈 것은 박 바오로와 박순집 베드로 가문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박 바오로는 기해박해 때, 앵베르 주교님, 모방 신부님, 샤스땅 신부님의 시신을 초자연적인 힘으로 새남터 형장으로부터 구해 내신 분입니다. 그리고 박 바오로는 병인박해때에 순교하셨습니다. 그의 아들 박순집 베드로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고 후일 세 분의 묘를 교회에 알려 오늘의 삼성산 성지를 만들게 한 분입니다. 샬트르 수녀회에는 박순집 베드로 증손녀 3명이 수녀가 되어 신앙선조의 공덕을 빛나게 했던 역사를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절두산 박물관에는 박순집 베드로와 박 바오로의 행적이 틀리게 전시되었는데 수차례 건의하였지만 묵살되고 있습니다. 샬트르 수녀회에서는 정확한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성전에서 수녀님들과 함께 한 기도 시간, 성무일도 낮기도와 삼종기도를 바치고 수녀원을 출발하여 절두산으로 향했습니다.

 

 

절두산 성지, 제 영혼의 고향으로 생각합니다. 지치고 힘들었던 IMF 때에 저는 이곳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받았던 축복의 땅입니다. 성지 입구에서 예수님이 우리를 마지하십니다.

 

참혹한 병인박해에 하느님을 믿는다는 죄로 맷돌에 걸린 밧줄에 목을 매야했던 그 아픔이 140여 년이 지난 세월에도 붉은 피의 흔적으로 남아 순례하는 우리를 묵묵히 바라보고 있습니다. 가을두, 용두봉, 잠두봉으로 불리우던 명승지가 1866년부터 시작된 병인박해로 절두산(切頭山)이란 이름으로 바뀐 역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요?

 

대원군이 15세의 고종을 앞세워 철권정치를 펼치기 위해 천주교를 박해한 병인박해는 절두산에서 그 절정을 이룹니다. 병인양요에 대한 보복으로 1866년 10월 22일에 봉천동에 사는 이의송 프란치스코 일가를 첫 처형한 이래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무명 순교자가 탄생한 성지, 1984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성하가 방문한 곳입니다.

 

 

지하 성해실에 스물일곱 분의 성인성녀와

한 분의 무명순교자의 유해는 참배하는 순례객에게 하느님의 영원한 나라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곳입니다. "현세의 삶은 우리를 넘어지게 유혹하지만 하느님 나라에 대한 꿈은 희망과 용기를 준단다." 성지순례의 참된 의미는 볼 것을 보고 안내 봉사자의 역사를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지에서 순교하신 분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분들의 모습을 간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지순례를 통해 하느님을 만나고 당당히 세상을 향한 내 발길을 당당하게 내딛는 것입니다.

 

4월 17일 세례를 받으시는 혜화동 예비신자 여러분,

여러분은 참 좋은 결정을 하셨습니다.

 

2011. 3. 6.

Martin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