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地巡禮

무명의 순교자 앞에 / 이해인

뚜르(Tours) 2010. 9. 22. 01:37

무명의 순교자 앞에 / 이해인

 

 

오래 전에 흙 속에 묻힌 당신의 눈물은

이제 내게 와서 살아 있는 꽃이 됩니다.

당신이 바라보던 강산과 하늘을,

날 바라보며 서 있는 땅

당신이 믿고 바라고 사랑하던 주님을

나도 믿고 바라고 사랑하며 민들레가 되고 싶은 이 땅에서

나도 당신처럼 남몰래 죽어가는 법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박해의 칼 아래 피 흘리며 부서진 당신들의 큰 사랑과 고통이

내 안에 서서히 가시로 박혀 나의 삶은 아플 때가 많습니다.

당신을 닮지 못한 부끄러움에 끝없는 몸살을 앓습니다.

당신을 통해 주님을 더욱 알았고 영원의 한 끝을 만졌으나

아직도 자주 흔들리는 나를 조용히 붙들어 주십시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거룩한 순교자여 !

오래 전에 흙속에 묻힌 당신들의 침묵은

이제 내게 와서 살아있는 말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