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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부활 제6주간 월요일) 제1독서 우리는 배를 타고 트로아스를 떠나 사모트라케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아 폴리스로 갔다. 거기에서 또 필리피로 갔는데, 그곳은 마케도니아 지역에서 첫째가는 도시로 로마 식민시였다. 우리는 그 도시에서 며칠을 보냈는데, 안식일에는 유다인들의 기도처가 있다고 생각되는 성문 밖 강가로 나갔다. 그리고 거기에 앉아 그곳에 모여 있는 여자들에게 말씀을 전하였다. 티아티라 시 출신의 자색 옷감 장수로 이미 하느님을 섬기는 이였던 리디아라는 여자도 듣고 있었는데, 바오로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이도록 하느님께서 그의 마음을 열어 주셨다. 리디아는 온 집안과 함께 세례를 받고 나서, "저를 주님의 신자로 여기시면 저의 집에 오셔서 지내십시오." 하고 청하며 우리에게 강권하였다.(사도 16,11-15) 복음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아버지에게서 너희에게로 보낼 보호자, 곧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께서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그리고 너희도 처음 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나를 증언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너희가 떨어져 나가지 않게 하려는 것 이다. 사람들이 너희를 회당에서 내쫓을 것이다. 게다가 너희를 죽이는 자 마다 하느님께 봉사한다고 생각할 때가 온다. 그들은 아버지도 나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한 짓을 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그들의 때가 오면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기억하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 15,26-16,4ㄱ) 오늘의 묵상 인간이면 누구나 굴레처럼 안고 사는 '고독'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고독은 높은 정신 세계를 가진 고등 동물에게만 존재하기에, 인간이면 누구나 숙명적 으로 고독합니다. 고독은 우리 인간의 한 중심에 자리 잡고 있어서 어느 누구 도 그 자리에 함께 할 수 없는 '홀로 있음'의 자리입니다. 고독은 고립과는 다릅니다. 고독은 홀로 있어도 열려 있지만, 고립은 함께 있어도 막혀 있는 것입니다. 고독은 세상 한복판에서도 고요하지만, 고립은 고요 속에서도 혼란스럽습니다. 고독은 유한한 인간이 무한하신 하느님과 통교하는 장소이지만, 고립은 아집과 독선에 사로잡힌 분열과 단절의 장소 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고독한 자리에서만이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고 충만 해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한평생 늘 고독하셨습니다.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하느님 의 아들로서 당신 사명을 홀로 감당하시며 사셔야 했습니다. 광야에서 매우 심한 유혹에 시달리실 때도, 오천 명을 먹이시고 난 뒤 군중의 환호를 뒤로하 시고 한적한 곳으로 물러가실 때도, 그분 삶의 한가운데에는 고독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모두 떠나고 홀로 십자가의 길을 걸으실 때, 십자가상에 서 성부 하느님마저도 침묵하실 때, 예수님의 고독은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신앙인은 예수님의 이런 고독과 친구입니다. 세상의 온갖 유혹에 시달릴 때 도, 사람들에게 얻은 인기와 환호에도, 모두 떠나고 혼자 남아 있어도, 고통 중 에도, 신앙인의 고독은 삶의 그 모든 순간에 오로지 우리의 보호자이신 성령께 의탁하며 진리에 머무는 것입니다. 유한한 우리가 무한하신 주님께 마음을 열 고 그분을 바라보며 세상의 모든 외로움을 견디는 것입니다. (매일미사에서 전재) 합니다. 수많은 사람이 사도들의 말을 듣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고 곳곳에 교회가 건설되었습니다. 그러나 새롭게 생겨난 초대 교회는 문화적 정치적 이유 로 온갖 수모와 박해를 받아야 했습니다. 곳곳에서 제자들이 돌팔매질을 당하고, 감옥에 갇히고 때로는 순교를 하기도 합니다. 초기의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온갖 박해를 받으면서 예수님의 오늘 복음 말씀을 기억하였을 것입니다. 제자들 은 세상이 자신들을 박해하는 이유는 바로 주님께서 자신들을 뽑아 주셨기 때문 이라 여기고, 박해가 심해질수록 자신들은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주님께 속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더욱 깊게 가졌을 것입니다. 초기 교회의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세상에서 미움을 받아도 이렇게 예수 님의 삶과 가르침을 기억하며 그들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세 상의 흐름과 현존하는 문화를 거슬러 서로 나누고 섬기며 사는 아름다운 사랑의 공동체를 건설했습니다(사도 2,44-47 참조). 이것이 우리 교회의 첫 모습입니다. 교회는 세상과 대조를 이루는 사회입니다. 세상이 온통 권력과 부를 좇을 때 이 를 거슬러 겸손하고 가난하게 살아야 합니다. 세상이 온통 헛돈 영예와 쾌락을 추구할 때 이를 거슬러 정의와 순결을 좇아 살아야 합니다. 세상의 물결과 함께 떠내려 가는 교회가 아니라, 물결을 거슬러 교회의 원천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의 원천이신 그리스도의 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이 이런 교회를 만드는 예수님의 지체라는 것을 마음속 깊이 새겨야 합니다. (매일미사에서 전재) ----------------------------------------------------------------- 오늘의 기도 "자비로우신 하느님, 파스카 축제를 지내는 저희가 언제나 그 신비의 풍요로움을 체험하며 살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2011.05.30. Martin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