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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0일, 오늘의 묵상(부활 제7주간 금요일)

뚜르(Tours) 2011. 6. 10. 00:09

 

    오늘의 묵상(부활 제7주간 금요일) 제1독서 그 무렵 아그리파스 임금과 베르니케가 카이사리아에 도착하여 페스투스 에게 인사하였다. 그들이 그곳에서 여러 날을 지내자 페스투스가 바오로의 사건을 꺼내어 임금에게 이야기하였다. "펠릭스가 버려두고 간 수인이 하나 있는데, 내가 예루살렘에 갔더니 수석 사제들과 유다인들의 원로들이 그에 대한 소송을 제기하면서 유죄 판결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고발을 당한 자가 고발한 자와 대면하여 고발 내용에 관한 변호의 기회를 가지기도 전에 사람을 내주는 것은 로마인들의 관례가 아니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이곳으로 함께 오자, 나는 지체하지 않고 그다음날로 재판 정에 앉아 그 사람을 데려오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런데 고발한 자들이 그 를 둘러섰지만 내가 짐작한 범법 사실은 하나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바오 로와 다투는 것은, 자기들만의 종교와 관련되고, 또 이미 죽었는데 바오로는 살아 있다고 주장하는 예수라는 사람과 관련된 몇 가지 문제뿐이었습니다. 나는 이 사건을 어떻게 심리해야 할지 몰라서, 그에게 예루살렘으로 가 그곳에서 이 사건에 관하여 재판을 받기를 원하는지 물었습니다. 바오로는 그대로 같혀 있다가 폐하의 판결을 받겠다고 상소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를 황제께 보낼 때까지 가두어 두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사도 25,13ㄴ-21) 복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그들과 함께 아침을 드신 다음, 시몬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 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어린 양들을 돌보아라." 예수님께서 다시 두 번째로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예수님께서 세 번째로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세 번이나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시므로 슬퍼 하며 대답하였다.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 하는 줄을 주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젊었을 때에는 스스로 허리띠를 매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다. 그러나 늙어서는 네가 두 팔을 벌리면 다른 이들 이 너에게 허리띠를 매어 주고서,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어,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느님을 영 광스럽게 할 것인지 가리키신 것이다. 이렇게 이르신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요한 21,15-19)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왜 세 번이나 배드로에게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셨을까요? 베드로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사랑의 고백을 세 번씩이나 듣고 싶어 하신 이유는 무엇인지요? 어떤 이는 대답하기를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배빈을 했기 때문에 다시 세 번을 사랑한다고 고백하여 그것을 되갚도록 하시려는 것이었 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지나간 잘못을 꼭 짚고 넘어가시 는 분 같지는 않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배신하고 눈물을 흘릴 때 인간의 나약함을 누구보다도 잘 아시는 주님이시기에 그 순간 이미 그의 잘못은 기억 도 하시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과 베드로의 관계보다도 예수님의 양들을 향한 사랑에 초점이 맞춰어져 있습니다. 베드로에게 세 번씩이나 예수님에 대한 사랑을 고 백하게 하시는 것은, 베드로의 마음속에 예수님을 향한 사랑을 새기시려는 것 입니다. 그것의 목적은 바로 예수님 당신 양들에 대한 사랑 때문입니다. 제자 들이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결코 양들을 잘 돌볼 수 없습니다. 그 양들은 '자신들의 양 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돌보아야 할 양 떼는 사목자에게는 본당 신자들이지만, 일반 신자들 에게는 신앙적으로 좀 더 못한 처지의 사람들일 수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만큼 빈 마음으로 주님의 양 떼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에게 세 번씩이나 '사랑'을 다짐하게 하시는 것은 예수님께서 '길 잃은 양'과 같은 당신의 백성을 이토록 사랑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목자의 마음으로 세상에서 주님의 양들을 사랑하고 돌볼 때 비로소 베드로의 고백은 우리의 고백이 될 수 있습니다.(매일미사에서 전재) ------------------------------------------------------------------- 오늘의 기도 "주 하느님, 그리스도의 영광과 성령의 빛으로 저희에게 영원한 생명의 문을 다시 열어 주셨으니, 이 위대한 은혜로 저희가 더욱 굳은 믿음을 갖게 하시고, 더 열심히 주님을 위하여 봉사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2011.06.10. 우리에게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물으시는 예수님을 묵상하며, Martin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