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西古今

빛과 그림자(1) - Don’t cry for me, Argentina!

뚜르(Tours) 2011. 6. 16. 23:16

 

사생아로 태어나 사회적 멸시를 받으며 자라온 에바 마리아 두아르떼,
영화배우의 꿈을 안고 나이트 클럽의 댄서로 시작하여 방송국 성우로 진출한 그녀는 1944년 어느날 난민 구제기관에서 당시 노동부 장관 후안 페론을 만나게 된다.
이 만남이 두 사람의 운명을 바꾼다.
아르헨티나의 정치적 격변기에 페론은 대통령으로, 에바는 퍼스트 레이디로 등극하게 된다.
영부인으로서 그녀는 자신이 당한 소외와 멸시를 평생 동안 잊지 않고 남편을 앞세워 불평등을 개선하는 운동을 시작한다. 특히 노동자들의 편에서 수많은 복지정책을 시행했다.

에바는 한때 부통령 후보로까지 추천됐지만, 서른세 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에비타의 신화’를 남긴 채 아르헨티나 국민들의 비탄 속에 사라진 것이다. 

뮤지컬과 영화로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진 영화 <에비타>에서
그녀는 “Don’t cry for me, Argentina”를 애절하게 부르며 관객을 숙연하게 만든다.
실제로 아르헨티나는 아직도 에비타의 신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짧지만 파란만장했던 여인의 그림자가 아직도 드리워져 있는 것은 어찌보면 단순한 이유에서다.
인기에 영합한 지나친 복지정책의 도입이 60년이 지나도록 아르헨티나 경제를 짓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에비타 이후에도 페론과 그의 후처 이자벨의 집권, 군정이 순환되는 가운데
한때 세계 7위였던 경제대국은 한없이 몰락했다. 

아르헨티나의 몰락은 정치와 경제의 실정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그러나 경제적 관점에서 가장 대표적인 실패의 원인을 찾는다면,
이는 형평과 효율은 같이 갈 수 없다는 십계명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일하지 않아도 월급을 받고, 연금과 복지혜택도 충분하여 모든 사람이 즐겁게 산다면 얼마나 천국 같은 세상이겠는가.
그러나 경제학에서는 공짜 점심이 없다고 했다.
누가 비용을 다 감당하겠는가.
우선, 일하지 않아도 생계가 해결된다면 누가 열심히 일하려 하겠는가.
사회 전체적으로 효율이 크게 저하될 수밖에 없다. 

실제 아르헨티나에서는 대학까지의 교육비와 공립 병원의 의료비용이 무료이며, 높은 실직 수당을 지급하는 등 에비타의 신화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 너무나 많다. 물론 복지정책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평등이나 형평을 지나치게 강조해 일하지 않고도 혜택을 받는 제도를 도입한다면 평등을 추구할 재원을 확보할 수 없게 된다. 

경제학에서 효율은 자신이 일한 것만큼 보상받을 때 가장 높아진다고 본다.
따라서 효율성을 높이려면 열심히 일한 사람이, 일한 대가에 따라 적절하게 보상받을 수 있는 제도를 정립시켜야 한다.
일한 것과 관계없이 누구나 혜택을 받게 하면 비록 형평이나 평등은 개선될지라도 효율성은 저하된다.
사회주의의 붕괴도 여기에서 비롯된 것 아닌가.
효율성을 높여야 적은 자원으로도 많은 양이 생산된다.
효율적인 제도가 뒷받침되어야만 기업가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열심히 일한다. 또한 ‘자신을 위해’ 일한 결과가 고용을 창출하고, 생산을 증대시켜 국민경제에 기여하게 된다.
효율이 낮으면 기업의 경쟁력은 당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물론 효율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일할 능력이 없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는 소외 계층이 등장할 수도 있다.
효율성을 이유로 부익부 빈익빈을 방치한다면, 사회적 불균형이 초래될 수도 있다. 따라서 지나친 효율 만능주의 역시 또 다른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형평과 효율은 양립하기 어렵다.
단지 서로가 균형을 찾아 조화되어야 할 뿐이다.
‘에비타 신화’의 빛과 그림자가 이계명에서 교차하고 있다.


 

                 정갑영 교수 지음 <나무 뒤에 숨은 사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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