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우의 목을 베어서였을까.
삼국지에서 오나라 손권은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한다.
그저 형 손책의 요절 덕분에 권좌를 차지한 ‘푸른 눈에 붉은 수염’으로 치부될 따름이다.
하지만 그의 시호는 대황제(大皇帝)였다.
비록 제갈공명에게 당했지만, 여하튼 적벽대전의 승자다.
그의 지론이 ‘적의 적은 동지’였다.
중모(仲謀)를 자(字)로 받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현대 외교도 마찬가지다.
미국이 중국과 ‘핑퐁’을 앞세워 손잡은 것도 소련을 의식해서다.
적의 적은 동지인 것이다.
국제관계에서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
‘이이제이(以夷制夷)’가 가장 효과적인 제어 수단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아이폰를 앞세운 애플에 맞서 삼성·노키아·모토로라가 안드로이드로 연합한 것도 더 큰 적을 겨냥한 ‘적과의 동침’일 터다.
‘36계’에 ‘부저추신(釜底抽薪)’이 있다.
부글부글 끓는 솥에 찬물을 붓는다고 가라앉으랴.
이내 비등(沸騰)하기 마련이다.
솥 아래 불붙은 장작을 빼내는 것이 원인을 해소하는 첩경이다.
그래서인가.
최근에는 산업스파이 대신 핵심 인력 스카우트다.
피 흘리는 전쟁보다 적장(敵將) 포섭이 빠른가.
애플·소니와 치열한 보안기술 경쟁을 펼쳐 유명해진 ‘천재 해커’ George Hotz(21)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업체 페이스북에 영입됐다.
조지 호츠는 2007년 이른바 아이폰 ‘탈옥(unlock)’으로 세계적 유명세를 얻었다.
‘지오핫(geohot)’이란 닉네임으로 애플 방호벽을 뚫어 아이폰 사용자가 통신사를 맘대로 선택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애플은 부랴부랴 보안 강화에 나섰지만 몇 달 뒤 또 한 번 그에게 무릎을 꿇었다.
2009년 말 호츠는 소니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3(PS3)의 탈옥을 선언했다.
긴 공방 끝에 올 1월 해킹에 성공했다.
소니는 그를 즉각 고소했고, 양측은 올 4월에야 합의에 도달했다.
그 와중에 해커 그룹 ‘어나니머스’가 호츠를 지지한다며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네트워크(PSN)를 해킹해 이용자 수백만 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뉴저지주 명문고 버겐카운티아카데미 출신인 호츠는 로체스터공대에 입학했다가 한 학기 만에 퇴학당했다.
MS도 게임기 ‘엑스박스(X-Box)’를 해킹한 14세 소년을 고소하는 대신 함께 일하기로 했다.
이들 모두가 개방과 공유를 앞세운 해커이자 행동가다.
바로 ‘핵티비스트(Hacktivist)’다.
따지고 보면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도 해커 출신이다.
국내 한 고교생이 개발한 ‘앱’들이 화제다. 공급자 위주의 ‘멍청이 스마트폰’을 사용자 위주로 전환하는 프로그램들이다. 개발자 이름을 붙여 ‘규혁 롬’이다. 모토로이를 비롯해 몇몇 기기의 족쇄를 풀어 네티즌들이 환호작약이다. 그런데 신규 ‘앱’ 개발진척도는 37%다. 기말고사 때문이란다. 마침 고려대가 ‘사이버 국방학과’를 신설한다고 한다. 그러잖아도 세계가 ‘사이버 전쟁’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상황이다. 차제에 ‘규혁 롬’ 주인공을 수시모집으로 뽑으면 어떤가.
박종권 /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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