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西古今

원로들은 어디에 계신가요?

뚜르(Tours) 2011. 7. 13. 10:29

얼마 전, 청와대에서 국민원로회의가 열렸다고 합니다. 
정치, 외교, 경제, 사회, 교육, 문화, 종교계 등 각 분야를 대표하는 원로들이 풍부한 경륜과 식견에서 우러나오는 다양한 의견을 대통령에게 전달하고 자문에 응하는 것이 원로회의의 기능이라고 하지요. 
특히 이번 회의의 주제가 ‘공정사회의 실현’이었다고 하니, 과연 어떤 발언들이 오갔는지 궁금하기만 합니다.  

 

   유감스럽게도 참석자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발언을 했는지는 거의 보도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임기를 마칠 때까지 부정부패를 척결하겠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다짐만 커다랗게 보도됐습니다. 
그날 저녁의 장•차관 연찬회에서 이 대통령이 원로회의의 분위기를 전달하며 “오늘 각계 원로들을 모셨는데 나라가 온통 썩은 것처럼 보인다고 하시더라”라고 소개한 것이 전부입니다.

  

   이처럼 정부가 공인한 원로회의가 존재하는데도 정작 “우리 사회에 원로가 없다”는 걱정들이 팽배한 것 같습니다. 
요즘처럼 서로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맬 때 나아갈 방향을 밝혀줄 ‘사회의 어른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걱정이겠지요. 
저마다 옳다고 다투면서도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제자리를 맴도는 우리의 현실이 바로 그런 걱정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요즘처럼 우리 사회가 좌충우돌 왕복달리기를 하는 경우도 별로 없었습니다. 
여야 정치권의 대립은 물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동반성장 문제가 그렇고 반값 등록금과 무료급식 논란이 또한 그렇습니다. 
그런 가운데 저축은행 사태로 드러난 우리 사회의 치부는 ‘공정사회 실현’이라는 공동의 가치를 일거에 무색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제는 자정(自淨) 기능도 거의 떨어져가는 듯한 느낌입니다. 
웬만한 감투를 썼던 분들은 거의 예외없이 전관예우의 자리를 기웃거리고 있으며 중앙부처들도 이해관계에 얽혀 있습니다. 
이런 판국에 검찰과 경찰이 난장판 싸움에 휘말렸고 일부 사업장에서는 노사관계가 파국으로 치닫기도 합니다. 
타협과 중재의 역할을 맡아야 하는 정치권도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오히려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합니다. 
 

 

   그런데도 우리의 막힌 심정을 시원하게 뚫어줄 원로들의 한마디 화두(話頭)가 들려오지 않는 것은 어째서일까요. 우리 사회의 각 분야에서 활동했던 수많은 원로 선배들께서는 지금 어디에 계시는 것일까요. 
앞서의 청와대 원로회의에서 이 대통령이 원로들의 의견을 들으며 직접 메모하는 사진이 배포된 것으로 미루어 분명히 심도있는 얘기들이 오갔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자세히 알 길이 없으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각계에서 원로 자리를 차지하고 계신 분은 많지만 그 가운데 과연 제대로 역할을 수행하고 계신 분이 얼마나 될까 하는 의아심을 감출 수가 없는 것도 그렇습니다. 
계급장과 훈장을 떼어내고도 두루 존경을 받을 수 있는 분들이 과연 몇 분이나 되겠습니까. 
정부의 중요 직책을 거쳤다거나 연세가 드셨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원로 대접을 받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학식이 높고 경륜이 뛰어나더라도 특정한 이해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함으로써 ‘원로’보다는 ‘거간꾼’’에 더 가까운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원로로 대접받는 위치를 이용하여 자기 용돈벌이에 치중하는 명망가일 뿐입니다. 
권력과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합니다. 
이와는 반대로 고매한 경륜과 인격을 갖췄으면서도 사회 문제에는 등한시함으로써 원로의 역할을 포기한 분들도 한둘이 아닙니다. 
공연히 시빗거리에 휘말리지 않겠다는 뜻일 겁니다. 

 

   지금의 시대적인 여건에서 원로로서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부정 비리를 질타하면서도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고 통합하는 것입니다. 
본인 스스로 한쪽편의 선수로서 싸움판에 뛰어드는 것이 아니라 공정한 심판으로서, 또는 중재자로서의 역할이 절실하다는 것이지요. 
본인의 평소 소신과 의지를 꺾으라는 것이 아니라 시대를 앞서간 선배로서 생각이 다른 후배들을 다독거리고 화해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원로를 원로로서, 선배를 선배로서 제대로 존경하고 따르는 풍토도 갖춰져야 할 것입니다. 
원로에 대한 대접이 소홀하다면 후배에 대한 인격적인 대접도 어려워질 수밖에 없겠지요. 
신문의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가치관에 혼돈이 생기고 부끄러움과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이 아침, 몇 마디 가르침을 들려줄 원로 선배님들의 목소리가 새삼 그리워집니다. 

                        <허영섭의 ‘세상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