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西古今

자기애 인격장애(NPD: 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

뚜르(Tours) 2012. 1. 24. 23:22

한국에 살면서 6년간 정치인들의 격렬한 싸움을 지켜보다가 한국 기자에게 사람들이 정계에 입문하는 계기가 뭐냐고 물은 적이 있다. “복수심 때문일 것”이라는 그의 대답은 충격이었다. 실제로 한국에선 복수심에 불타는 것처럼 보이는 국회의원들이 성공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어떤 경우엔 의원들이 ‘자기애 인격장애(NPD: 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가 있는 게 아닌지 의문을 품게 된다.

NPD란 실제보다 자기를 크게 생각하고 자기는 주변의 존경을 받아야 한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겪는 정신장애다. 이들은 스스로 잘났다고 생각하지만 강력한 자신감 뒤에는 열등감을 감추고 있다. 전문가들은 “NPD 증세를 겪는 이들은 응당 받아야 한다고 느끼는 대접을 못 받으면 벌컥 화를 낸다”며 “다른 사람들에 대해 분노나 경멸의 감정을 보이는 것은 자기들이 더 낫다고 느끼기 위한 측면이 있다”고 덧붙인다.

한국에선 국회의원들이 자신이 한 잘못된 행동을 남 탓으로 돌리는 걸 흔히 보게 된다. 최근 민주노동당 김선동 의원이 국회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처리할 때 동료 의원들에게 최루탄을 뿌렸다는 뉴스는 충격적이다. 김 의원은 어떤 종류의 유감도 표명하지 않았다. 그는 “난 어떤 것도 두렵지 않다. 진짜 테러리스트는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마음속 깊이 자신의 행동이 옳다고 믿고 있는 것 같다. 그가 폭력에 의존해서라도 입법 과정을 중단시키겠다는 신념을 갖고 있는 한 그걸 바꾸기는 어떤 논리로도, 혹은 협박으로도 불가능할 것 같다. 그는 아마도 자신이 일반 의원들 보다 더 똑똑하다고 믿을지도 모른다. (절대적으로 옳은) 그의 정치적 이념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겐 물리적으로라도 해를 입혀야 한다고 느끼고 있을 수도 있다.

극단적 행동을 하는 사람들 중에서는 NPD와 더불어 ‘경계선 성격 장애(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가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사람들은 세상만사를 흑과 백으로 나눠 본다. 그래서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은 적이고, 자신은 그런 적들에 의해 희생양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에게 가해지는 위협에 대해선 강렬하고 억누를 수 없는 복수심이 튀어나온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주장은 어떤 경우라도 합리적이거나 이성적인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국회의원들은 나름대로는 훌륭한 분들일 것이다. 하지만 보수와 진보의 대결구도가 진행되는 걸 지켜보자면 한결같이 ‘집단적 인격장애’를 앓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내 편은 모두 영웅이고 상대방은 모두 공공의 적이다. 누구든 내편이거나 아니면 적이다. 그 중간은 없다. 게다가 같은 편을 하던 사람들도 상황이 바뀌면 즉각 새로운 적의 범주로 분류되니 이해하기 어렵다.

강남좌파도 마찬가지다. 자신들은 호사스러운 생활을 하면서도 부유층들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말하는데 강남이 없는 미국에선 이들을 ‘리무진 좌파’라고 부른다. 노무현 전 대통령 당시 집권 여당이던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자신들을 서민의 수호자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부의 공평한 재분배를 주장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취임 초기에 열린우리당이 국민 세금으로 의원들의 월급을 올려주는 법안을 통과시켰던 기억이 난다. 이래저래 모순된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한국 정치인들이 정말로 나르시시즘에 빠져 있는 것일까. 그건 정신과 의사들만이 진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말과 행동만을 근거로 판단하면 얼마든지 그렇게 보일 수 있다.
 

<톰 맥그리거>
베이징에서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미국 출신 언론인.
중국 라디오 인터내셔널(CRI) 에디터를 역임했다.
한국에서도 6년가량 영자지 칼럼니스트로서 글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