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西古今

소리의 색

뚜르(Tours) 2012. 4. 3. 23:34

초등학교를 다니는 딸아이가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길을 가다 만나는, 알지도 못하는 유치원생에게는 굉장히 부드럽고 친절하게 이야기하면서, 정작 딸인 자신에게는 그렇게 상냥한 목소리로 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웃음이 나오지만 아이 입장에서 생각해 보니 맞습니다. 제가 전처럼 나긋나긋, 최대한 예쁜 목소리를 내고 있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더 어렸을 때는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밝고 화사한 색깔의 장난감이며 옷이며, 목소리도 아이처럼 사랑스런 색깔을 내려 했던 것이지요. 밝고 연한 노랑이나 분홍, 연두 같은 색으로 말입니다. 지금은 그보다 색깔이 다소 어둡고 무거워졌습니다. 진한 느낌의 빨강이나 주황, 때론 짙은 파랑 같이 냉랭하고, 강한 목소리가 자주 나옵니다.

   소리를 통해서 색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사람의 목소리만으로도 그 사람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이는 제 목소리에서 감정의 변화를 느끼는 것이고, 결국 소리를 통해 기색(氣色)을 살피고, 나아가 안색(顔色)이 어떨지도 알게 됩니다. 소리라는 청각이 색이라는 시각을 만나 일으키는 공감각(共感覺)입니다.

   인간의 목소리를 색의 삼속성, 즉 색상(色相: 색을 구별하는 이름), 명도(明度: 밝고 어둠의 정도), 채도(彩度: 색의 순수한 정도)로 나누어 볼 수도 있습니다. 먼저 말할 때의 감정을 알 수 있는 것은 색상이 됩니다. 다정하고 친밀감 있는 대화는 붉은 계통의 따뜻한 색이, 차갑고 냉정한 대화는 푸른 계통의 차가운 색이 느껴집니다.

   소리의 높고 낮음은 명도와 관련이 깊습니다. 높은 소리는 밝은 색이고 낮은 소리는 어두운 색이 되는 것이지요. 말하는 스타일은 채도와 연관됩니다. 분명하고 똑똑한 말소리는 선명하여 높은 채도를 나타내고, 우물쭈물 왠지 흐릿한 목소리는 낮은 채도를 느끼게 합니다.

   소리가 색으로 이어지는 감정 효과는 거꾸로 색을 통해 소리를 느낄 수도 있기에, 많은 화가들이 색을 음악과 연결하여 이야기했습니다. 마티스는 "나의 모든 색들은 다함께 노래한다. 음악에서의 화음 같이 색들은 합창에 필요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고, 고갱은 "색을 연결하여 음악적 하모니를 완성한다."고 하였습니다.

   휘슬러는 그림 제목들을 아예 음악적으로 붙여서 그림의 분위기와 색채에 대한 그의 감정들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검정과 금빛의 야상곡: 떨어지는 불꽃>, <보라와 녹색의 변주>, <백색의 심포니>, <회색과 녹색의 하모니>등. 작품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음악과 회화가 만나는 추상성, 소리와 색의 공감각을 중시합니다.

   칸딘스키는 소리와 색채의 연상을 악기에 비교해 놓기도 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노란색은 트럼펫, 빨간색은 튜바, 파란색은 플루트, 짙은 파란색은 첼로와 흡사하고 그 색을 더 짙게 하면 콘트라베이스가 되는 것입니다. 보라색은 잉글리시호른과 피리의 은은한 진동을 지니며, 심오한 색조로 바순의 베이스와 상응한다고도 했습니다.

   예술가가 아닌 일반인들도 음악을 들을 때 색채반응을 경험한다는 조사연구가 있기도 했고, 실제로 무의식적으로 어떤 소리를 듣게 되면 소리에서 색채를 보는 공감각자들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소리에도 색이 있음을 느끼는 것입니다.

   이제 몸에 지니고 있는 악기, 즉 목소리를 어떻게 연주할까 잘 생각해봐야겠습니다. 소리가 색을 띤다는 것은, 목소리로 낯빛을 나타내는 거니, 좀 더 아름답고 부드럽게 연주하고 싶네요. 이쯤에서 반성하고 아이에게 좀 더 다정다감한 목소리로 이야기해야겠습니다. 엄마의 목소리에 우리 아이 얼굴색이 환해지겠지요.


                     안진의 / 한국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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