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이 오시는 곳은….
옛 선사가 이르기를 자연법이(自然法爾)라고 했다.
자연의 모습 그대로가 진리라는 것이다.
산에 살다보면 계절이 바뀔 때마다 정말로 실감나는 것이 이 말이다.
특히 봄 산이 변하는 모습은 활동사진보다 더 신기하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백담계곡에는 어느새 맑은 물이 소리내 흐르고, 부드러워진 땅에서는 온갖 이름 모를 풀들이 신비한 얼굴을 내민다.
산은 높고 물은 길게 흐른다.
버들은 푸르고 꽃은 붉다.
오늘 아침은 나뭇잎이 온 산을 연초록으로 물들이며 피어나고, 내일 아침에는 온갖 꽃들이 벙그렇게 꽃망울을 터뜨린다.
대통령이 들으면 섭섭하겠지만 대통령의 권력으로도 못할 일을 소리소문 없이 해내는 것이 자연이다.
이처럼 위대한 부처의 모습이 또 어디에 있으랴.
그래서 소동파는 이렇게 읊었다.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가 부처의 설법인데, 저 푸른 산이 어찌 법신부처의 몸이 아니랴(溪聲便是長廣舌 山色豈非淸淨身)"
부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오묘한 자연의 모습이 바로 부처이니, 설법을 따로 들으려 하지 말고 계곡의 물소리에서 진리의 말씀을 들어야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자연에서 진리의 몸을 보고, 거기에서 부처의 설법을 듣는다면 더 이상 다른 곳에서 부처를 찾을 필요가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법신(法身)의 부처를 보고도 부처를 알아보지 못한다.
이게 문제다.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뜻은 진리를 보고도 깨닫지 못하는 중생들에게 삶의 진상을 가르쳐주기 위해서다.
부처님의 가르침이란 가만히 뜯어보면 별것도 아니다.
모든 것은 쉬지 않고 변해간다는 것(諸行無常),
그래서 어느 것도 독립된 실체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諸法無我),
그러므로 삶은 괴롭다는 것(一切皆苦)이 핵심이다.
그러니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너무 집착하지 말고, 너무 많이 소유하려 하지 말고, 조금씩 비우고 덜어내라는 것이다.
세상은 너무 많이 가지려 하는데서 싸움이 생기지 덜어내려는 데서 싸움이 생기지는 않기 때문이다.
자연을 보면 이 점은 더욱 분명해진다.
나무가 겨울을 나자면 몸 속의 수액을 다 내보내야 얼어죽지 않는다.
그러다가 봄이 되어 싹을 틔우려면 잔뿌리까지 힘을 다해 다시 물을 빨아들인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채우기만 하고 비우지 못하면, 수액을 배출하지 못한 겨울나무처럼 얼어죽기 십상이다.
욕심을 비워내야 그 자리에 더 푸른 잎과 아름다운 꽃이 핀다.
자연은 또 이렇게 가르친다.
바위와 흙, 소나무와 참나무가 서로를 인정하고 어울려 살듯 함께 살아가라고.
이를 불가에서는 용사동거(龍蛇同居)라 한다.
용과 뱀이 어울려 살아가는 것이지, 용만 살거나 뱀만 살수는 없다.
여자는 여자끼리, 남자는 남자끼리 모여 살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싸우지 말고 화해하고 용서하며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사월초파일은 부처님오신날이다.
하지만 부처님은 이미 만개한 봄꽃 속에, 푸른 나뭇잎에, 달콤한 꽃바람 속에 와 계신다.
마음의 눈이 열린 사람은 언제나 가슴속에 부처님을 모시고 살아가지만,
무명의 먹구름에 가린 사람은 사월초파일을 3000번을 맞아도 부처님을 볼 수 없다.
내 마음에는 부처님이 와 계신지, 오늘 모두 한번 찾아볼 일이다.
오현스님 / 백담사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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