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자기 자신을 가꾸는 동물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으레 이 닦고 세수하고 남자라면 면도하고 여자는 화장을 한다.
의상을 걸치고 거울 앞에 서서 옷 매무새를 다듬고 매만진다.
그리고는 각자 자기 일을 위해 나선다.
집안에서 가정을 가꾸는 주부들이나 노인네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대개 정해진 것처럼 앞치장에 공을 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뒷치장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이것이 문제다.
뒷모습을 관리하자.
앞모습은 자기 스스로 볼 수 있는 부분이니까 열심히 다듬고 가꾸어 만들어낼 수 있다.
중요한 장식 같은 것도 대개 앞모습에 치중되어 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참모습은 그 뒷모습에 있다고 하지 않는가.
아침 일찍 거리에 나가 출근하는 사람들이 뒷모습을 보라.
그 사람들 하나하나의 뒷모습에 각각의 인생이 그려져 있다.
운명이 그려져 있는 것이다.
아침부터 무엇에 기가 죽었는지 축 늘어진 어깨,
아니면 지나치게 당당해 보이지만 무엇인가 모르게 허전해 보이는 어깨,
갈대처럼 살랑거리지만 텅 빈 머리를 상징하는 어깨…
그리고 또 황혼이 지는 저녁, 뿌연 도시의 어지러움 속에서 허둥지둥 사라지는 퇴근길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라.
하루종일 지친 몸이라 어깨가 축 처지는 것은 있을 수 있는 법이지만 충실한 하루를 보낸 후의 적절한 피로는 지극히 감미로운 법이다.
뒷모습을 보면 그 사람이 느끼는 보람의 정도를 안다.
연인들도 스스로 깨닫지는 못하지만 진짜 애인의 참모습은 ‘안녕’하며 사라지는 상대의 뒷모습에서 강하게 느낀다고 한다.
연출하지 않은 모습, 진짜 한 인간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뒤돌아선 순간의 뒷모습에 끌리는, 그런 멋진 인생이 왜들 연출되지 않는 것일까.
대개 뒷모습은 어깨와 몸 전체의 균형, 그리고 발뒤꿈치로써 직감적으로 판단된다.
운명의 신은 여러분의 인생을 뒷모습에서 채점한다.
듬직한 어깨와 발뒤꿈치의 당당함은 기교로써 연출되지 않는다.
진실 그 자체가 바로 꾸밈없는 최선의 연출이다.
뒷모습이야말로 정말로 꾸밈없는 진실을 비추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신영철 지음 <신사장의 편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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