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西古今

때로는 도망가는 것도 상책이 될 수 있다

뚜르(Tours) 2012. 8. 12. 10:00

우리들이 흔히 쓰는 ’삼십육계 줄행랑’이란 말은,
병법 <삼십육계>중에서 가장 마지막 전술인 ’주위상走爲上’을 한글 식으로 잘못 발음한 것입니다.
주위상走爲上, 정확한 뜻은 상대방이 나보다 훨씬 강한 상대라서 싸울 수 없다면
도망가는 것(走)도 상책이 된다(爲上)는 뜻입니다.
상대방이 우세한 상황에서 도저히 싸워 이길 수 없다면
적과의 결전을 피하기 위하여 세 가지 방법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항복할 것인가, 강화를맺을 것인가? 아니면 후퇴할 것인가?
이 셋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도망가는 것도 상책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항복하면 완전히 패하는 것이요, 강화를 맺으면 절반의 패배요, 후퇴하면 아직 패배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살다가 한 발 뒤로 물러나는 것은 소극적인 전술이 아닙니다.
후퇴의 목적은 감정을 잠깐 추스르고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시간을 버는 일입니다.
적극적인 후퇴는 승리의 기회로 전환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싸움의 결과는 끝까지 가봐야 압니다.
지금 내가 분노를 못 참고 상대방을 맞이하여 싸우다 다시는 재기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기보다는
최후의 승리를 위하여 한 발 뒤로 물러나는 것이 더욱 아름다운 선택일 수 있습니다.
’도망칠 수 있는데 도망치지 않는 것은 영웅이 아니다.
상황을 판단하여 안 되겠으면 도망가거나 피하고, 이길 것 같으면 공격하라’는
<손자병법>의 메시지는 명분 전쟁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측면입니다.
공격과 후퇴, 기다림과 수비 등 다양한 결정과 판단을 내릴 수 있다면
감정과 분노에서 벗어난 이성적인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생이란 나아가야 할 때도 있고 물러나야 할 때도 있고 기다릴 때도 있는 유기적인 것입니다.
지금 안 되면 역량을 축적하기 위하여 한 발짝 물러설 줄 아는 사람은
때로는 도망가는 것도 상책일 수 있다는 ’주위상走爲上’의 병법을 정확히 이해한 사람일 것입니다.


도망가는 것은 수치가 아니라 지혜로운 결정입니다.

박재희 지음 <3분 古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