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西古今

변화를 멈출 때 비로소 늙기 시작한다

뚜르(Tours) 2012. 8. 10. 14:28

나이 쉰을 넘겨 지천명(知天命)과 이순(耳順)의 중간에 가까운 나이가 되고 보니 나이를 먹는 것에 점점 무감각해진다. 불의의 사고로, 또는 지병으로 하나 둘 사라져가는 친구나 동창들을 볼 때마다 남은 인생이 덤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갈수록 늘어나는 평균수명과 쥐꼬리만 한 예상 연금 수령액을 비교하면 조바심을 내야 마땅하지만 왠지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다. 앞만 보고 달려온 베이비붐 세대의 마지막 남은 오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하긴 미리 걱정한다고 크게 달라질 것도 아니다.

 언제부턴가 세상살이 마음먹기 나름이란 각오로 살고 있다. 검은색 안경을 쓰고 보면 검게 보이고, 노란색 안경을 쓰고 보면 노랗게 보인다. 부정적인 마음으로 세상을 보면 뭐든지 뒤틀려 보이기 마련이다. 긍정적인 눈으로 봐야 검은 구름 속에서도 한 줄기 햇살을 볼 수 있다. 나이가 든 데다 생각까지 어둡고 부정적이라면 그런 사람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가족들도 싫어할 것이다.

 몇 년 전 세밑에 린위탕(林語堂)의 『생활의 발견』을 인용해 현실과 꿈이 조화를 이루되 유머를 잃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현실을 바탕으로 꿈을 꾸지만 그것을 한 발 떨어져서 비스듬히 바라볼 줄 아는 여유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갈수록 절실하다. 부정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면 한이 없다. 터널 속에서도 터널 밖의 세상을 생각하며 껄껄 웃어넘길 줄 알아야 한다.

 

 나이가 들수록 변화에 부정적이고, 변화 자체를 거부하기 쉽다. 눈이 쌓인 큰 나뭇가지는 결국 부러지고 꺾인다. 그러나 작은 나뭇가지는 자연스럽게 휘어져 눈을 아래로 털어버리고 원래 상태로 돌아가 본모습을 유지한다. 2000년 전, 눈길을 걷던 노자는 눈 덮인 나뭇가지를 보고 형태를 구부러뜨려 변화하는 것이 버티고 저항하는 것보다 낫다는 이치를 깨달았다.

 변화하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 변화를 멈출 때 비로소 늙기 시작한다.

                   배명복 / 중앙일보 <분수대>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