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西古今

진정한 영웅은 어려울 때 알아볼 수 있다

뚜르(Tours) 2012. 9. 10. 07:55

디 에지”(The Edge)라는 제목의 미국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주인공은 60대 후반, 부인은 미녀의 사진모델로 발랄한 30대 후반으로 남성 사진작가와 눈이 맞는 사이였다.
노 남편은 평소에 책만 읽는 선비였다.


산장 벽에 걸린 인디언 사진 하나가 사진작가를 매혹시켰다.
작가는 카메라에 그의 사진을 꼭 담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서 수상 이착륙 비행기가 떴다.
파일럿, 남편, 사진작가, 그리고 흑인 청년 네 사람을 태운 비행기는 엔진고장으로 깊은 격류 속에 추락한다.


조종사는 즉사했고, 사진작가는 혼자 물속에서 탈출해 수상으로 올라왔고, 노인은 칼을 꺼내 흑인을 묶고 있던 안전벨트를 끊어 주며 함께 수상으로 올라온다.
망망한 수림에 고립된 세 사람, 너무나 방대한 첩첩 산중이라 추락한 곳이 어디이며 어디로 가야 하는지 고립무원의 상태가 됐다.


노인은 사진작가에게 “나를 언제 죽일 것이냐”고 묻는다.
사진작가가 놀라며 왜 그런 말을 하느냐고 되묻는다.


“나는 네가 내 와이프와 주고받는 눈길을 보았다. 내 재산이 탐이 나면 나를 죽일 것 아니냐”


이 말에 젊은 작가는 화를 냈지만 노인은 정확히 그의 심중을 찔렀다.
사실 그 노인은 억만장자였다.

공포에 질린 젊은 작가와 흑인은 노인으로부터 무슨 빚이라도 받을 게 있는 것처럼 “우리의 살길이 있느냐”며 노인을 다그친다.
똑같은 처지에서 어리광을 부리는 것이다.
공포와 초조감에 떠는 두 청년을 향해 노인은 이렇게 말했다.


“산속에 조난당한 사람들이 죽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 사람들은 자기가 왜 이런 난관에 봉착하게 됐는지, 지나간 일을 원망하다가 죽는다”

“그게 무슨 말이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를 끝없이 생각하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

“그건 또 무슨 말이요. 우리가 어떻게 해야 산단 말이오?”

“생각하라, 계속 앞만을 생각하라”

맹수가 파리 한 마리를 잡으려 해도 혼신을 다 해야 잡을 수 있다.
하지만 흑인 청년에게는 그런 자세가 없었다.
내키지 않는 일을 적당히 그리고 어설픈 자세로 하다가 그만 다리에 커다란 상처를 내고 말았다.
그리고 울부짖었다.


“나는 하는 일이 다 이렇게 어설퍼요”

노인은 지혈을 시키고 피를 말끔히 닦은 다음 피 묻은 천들을 땅 속에 묻으라고 사진작가에 명한다.

“피는 불곰을 불러들인다”

하지만 미남의 사진작가는 땅을 파기 싫어 피 묻은 헝겊을 나무 가지에 걸어놓았다.
피 냄새는 불곰을 불렀다.
두 사람이 보는 앞에서 불곰은 흑인청년을 말끔히 해치웠다.


그후로도 사진작가는 어리광만 부린다.
노인은 사진작가에게 자기를 따라 소리를 지르라 강요한다.

“If somebody can do, I can do" (남이 할 수 있으면 나도 할 수 있다).

더 크게 소리치라며 마치 특공대를 훈련시키듯이 반복했다.
소리는 점점 크게 났지만 자신감 있는 목소리가 아니라 속으로만 울부짖는 기어가는 소리였다.


불곰의 공격은 집요했다.
벼랑 끝까지 쫓긴 이들이 강물 속으로 다이빙하여 강을 건넜다.
노인은 불을 피웠다.
단단한 석가래 끝을 뾰족하게 깎아 불에 그을려 단단하게 강도를 높였다.
불이 붙어 있는 나무를 이리저리 흔들며 불곰을 위협했지만 성난 불곰의 공격 앞에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불곰이 공중으로 높이 뛰면서 노인을 향해 덮쳐왔다.
바로 이때 노인은 뾰족하게 구운 나무창 자루를 땅에 지지하고 창끝을 불곰의 가슴을 향해 조준했다.
창끝이 불곰의 등을 관통했다.


화면에 흐르는 교훈은 두 젊은이와 노인의 자세였다.
노인은 늘 독서를 했다.
아는 게 참으로 많고, 지혜도 많고, 의지와 용기가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과거를 후회하지 않고, 불곰과 싸우면서 역경을 빠져나갈 궁리에만 몰두했다는 점이다.

“억만장자인 내가 늘그막에 왜 이런 처지를 당해야 하는가!”

이런 생각을 했더라면 그는 뾰족한 막대기를 준비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랬더라면 두 사람은 불곰의 밥이 됐을 것이다.
이에 반해 두 젊은이들은 투정과 어리광으로 일관했다.

“구조될 가능성은 몇 %나 될까요?”

“억만장자가 죽도록 주위 사람들이 지켜만 볼까요? 구조대가 곧 오겠지요?”

산장에 비행기를 타고 내릴 때까지만 해도 사진작가의 기세는 등등했고, 팀의 화려한 우두머리였다.
활달한 미남으로 노인의 젊은 부인과 정을 통할 만큼 거칠 데가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망망 산중에 고립무원의 비상상태에서는 억만장자가 우두머리였다.
억만장자가 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진정한 영웅은 어려울 때만 알아볼 수 있다.
어렵지 않을 때에는 거짓이 영웅을 만드는 것이다.


이 영화의 교훈을 부정할 사람들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작가는 우리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 ‘꼬질꼬질한 노인’과 ‘화려하고 젊은 바람꾼 사진작가’를 대조시켰다.

 

박영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