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구에서 <리베로>는 고독한 포지션입니다.
몸을 날리며 궂은 일을 도맡아 하지만 알아주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한국 최고의 리베로 삼성화재 여오현이 최초로 통산 3000 디그 - 상대의 스파이크를 받아내는 것 - 의 금자탑을 쌓았습니다.
통산 리시브 역시 4392개로 그가 1위입니다.
2위와는 1000개 이상 차이가 납니다.
공격수가 통산 3000득점을 했다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겠지만 그의 3000 디그는 조용히 넘어갔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20대 초반만 해도 내가 힘들게 받아 득점으로 연결된 건데 공격수만 알아주는 것 같아 서운했어요.
지금은 그런 생각 안 해요.
팀이 이기는 게 먼저니까요.
리베로의 최고 덕목은 성실함이에요.
뒤에서 받쳐 주고 도와주는 일에 만족을 느껴야 하죠."
# 세계적으로 유명한 지휘자 레오날드 번스타인에게 한 사람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악기 중에서 가장 다루기 힘든 악기는 무엇입니까?"
그러자 번스타인은 의외의 대답을 했습니다.
"제2 바이올린입니다.
제1 바이올린을 훌륭하게 연주하는 사람과 똑같은 열의를 가지고 제2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사람을 구하기는 어렵습니다.
플루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제1 연주자는 많지만 그와 함께 아름다운 화음을 이루어 줄 제2 연주자는 적습니다.
만약 아무도 제2 연주자가 되기를 원치 않는다면 아름다운 음악이란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 자전거를 타고 피레네산맥을 넘는 인내의 레이스인 ‘투르 드 프랑스’에서,
미국의 랜스 암스트롱 선수가 5연패를 달성했습니다.
암스트롱이 5연패를 달성하던 그 경기 때였습니다.
제15구간이 시작되기 전까지 암스트롱과 독일의 얀 울리히선수의 시간차는 단 15초로, 박빙의 승부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울리히는 1999년부터 줄곧 암스트롱에게 1위 자리를 내준 만년 2위 선수였습니다.
15구간이 진행되던 중, 암스트롱은 응원 나온 한 아이의 가방에 걸려 자전거와 함께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울리히는 달려 나가기만 하면 역전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이클을 세우고 침착한 표정으로 암스트롱이 일어나길 기다렸습니다.
암스트롱이 일어나 다시 페달을 밟기 시작한 뒤 그 역시 비로소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울리히는 1등 자리를 암스트롱에게 내주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울리히의 멈춤과 기다림을 바보 같은 짓이라고 비웃지 않았습니다.
1등, 최고, 주인공만이 가장 행복한 삶이라 생각하고,
그것만을 쫓는 우리들에게,
조용하게 다가오는 이야기가 아닐는지요.
/박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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