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값 등록금 공약, 文은 '공짜 밥' 朴은 '노력 필요'…
부모 세대 50대는 포퓰리즘 거부해
우리에겐 아직도 '내핍 DNA' 존재… 남은 건 리더의 몫
- 윤영신 사회정책부장
대학 등록금은 서민과 중산층엔 무척 버겁다. 자식 등록금 대느라 집 담보로 빚을 내고, 사채업자에게 손을 벌린다. 그래도 안 되면 자식을 휴학시키거나 군에 보낸다. 자식 등록금 때문에 한숨짓는 부모들은 대개 50대다.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표 반값 등록금'을 받을 거냐 아니면 '박근혜표 반값 등록금'을 받을 거냐는 선택의 기회가 그들 앞에 던져졌다. '문재인표 반값 등록금'은 등록금에 시달리는 50대의 눈을 핑 돌게 만들 정도로 파격적이었다. 전국의 220만명 대학생 전원에게 무조건 등록금 액수를 절반으로 뚝 자르겠다는 것이었다. 그걸 받을 것인가 말 것인가.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세계 경제 10위권 나라의 유권자들에게 던져진 그 '유혹'은 한국 시민의 의식 수준을 테스트하는 잔인함이기도 했다.
'문재인표 반값 등록금'에 비하면 '박근혜표 반값 등록금'은 합리적이었다. 가난의 정도가 심할수록 더 많은 장학금을 주고, 공부를 게을리하는 학생에겐 장학금을 주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등록금 부담을 덜어주되 '묻지마식 퍼주기'는 아니다. 집안이 아무리 빈궁해도 공부하지 않아 B학점이나 C학점 이상을 못 받는 학생에겐 관용을 베풀지 않는다. 그래서 '세상에 공짜 밥은 없다'는 최소한의 정의(正義)의 공평을 잃지 않았다. 50대 부모들에게 '문재인표 반값 등록금'은 공짜 밥을 거저먹는 쉬운 길이고, '박근혜표 반값 등록금'은 빈자(貧者)일지라도 노력이 필요한 길이었다.
한국의 50대 부모들은 후자를 더 많이 택했다. 50대 유권자 중 436만명이 박근혜 후보에게 표를 줬고, 260만명이 문재인 후보에게 투표했다. 후보를 고르는 데는 저마다 다른 사정이 있었겠지만 한국의 50대 부모들은 공짜를 덥석 물지는 않은 것이다. 우리 국민은 이번 선거에서 나라 살림을 거덜낼 포퓰리즘이 가득 찬 '문재인 복지'보다는 복지의 그릇이 찰랑대며 흘러넘치는 '박근혜 복지'를 선택했다. 복지 욕구가 분출하는 극도의 불확실성 시대에 '나'보다는 '우리'와 '나라'의 미래를 먼저 생각하는 지혜를 보여줬다.
이런 절제와 선택이 가능한 것은 우리에게 아직 내핍할 줄 아는 DNA가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후 기적 같은 압축 성장에 성공해 선진국 문턱까지 숨 가쁘게 달려왔다. 하지만 많은 국민에게 아직 배고픔을 참아내고 위기에 쉽게 주저앉지 않은 경험이 지워지지 않았다. 그리스나 스페인처럼 나라가 어려워지면 "내 빵을 왜 줄이느냐"고 돌을 던지기보다는 자기가 먹고 입고 즐길 것을 줄이고 이웃에게 나눠주며 살 줄 아는 방식을 잊지 않았다. 이 DNA가 돈보다는 내핍과 나눔으로 어려움을 이겨내는 한국만의 '혹독하면서도 강한 복지'이고, 복지병(病) 바이러스를 거부하는 강력한 항체일지 모른다.
금융소득 종합과세 기준을 4000만원에서 2000만원을 낮춘 것은 우리 세금 역사에 기록될 파격적인 것이다. 경제 상황이 조금 나아지면 이 세금을 내야 할 사람이 수십만~수백만명으로 늘어나고 자산이 많은 사람의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돼 있다. 이 '세금 혁명'에 대해 '가진 자'들의 저항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떠들썩한 소리가 아직 들리지 않는다. 그들은 세상의 변화를 내다보고 '내 것을 떼어 나누며 살겠다'는 생각을 벌써 다지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 국민은 스스로 복지병을 예방할 줄 알고 나눔의 바이러스를 퍼트리기 시작했다. 이런 국민의 모습에서 한국의 미래는 희망적이란 기대를 가져본다. 국민은 씀씀이를 줄이고 고통을 감내하며 미래를 헤쳐갈 준비가 돼 있다. 이제 남은 것은 국가 리더와 정치인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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