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西古今

부자로 삽시다.

뚜르(Tours) 2013. 1. 9. 07:56

"돈 많이 벌어 부~자 되세요!" 하는 인사로 올해를 시작했는데 벌써 이 해도 과거속으로 가게 됐습니다. 얼마나 부자가 됐는지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지나온 한 해를 생각하면서 문득 뒷동산을 말없이 지키는 나무들을 바라봅니다.

제법 찬바람이 불어오는 겨울인데 나무는 오히려 옷을 벗고 있습니다. 그 동안 몸에 지녔던 모든 것들을 남김없이 영원한 고향인 흙에 다 돌려주고 난 나무가 오히려 아름답게 여겨집니다. 하늘을 향해 손을 뻗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여름 풍성하게 지녔을 때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지만 지녔던 것들을 훌훌 털고 보니 언제나 하늘을 향해 속삭이고 손을 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도 그러하겠지요. 주변에 함께 부대끼는 사람들도 많고, 지닌것도 많고, 해야할 일들도 많을 때는 잘 모르겠지만 언제나 자신도 모르게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생의 겨울에서나 깨닫는 것이 아닐런지 모르겠습니다.

나무는 자신이 지닌 것을 한번도 자기의 것이라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 몸에서 난 꽃도 잎사귀도 모두 내어줌으로써 오히려 자신은 성장하고 살아갑니다. 만약에 자기가 생산해냈으니 자기 것이라 주장하고 꽃도 잎사귀도 꼭꼭 간직하면서 내어주지 않는다면 그 나무는 이내 병들고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새도 떠날 것이고 숲도 생명을 잃게 될 것입니다. "죽으면 살리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바로 이것을 두고 하는 말씀이겠습니다. 그것은 한 편으로는 상실의 아픔들을 희망의 새살로 채우는 부활의 체험일 듯 싶습니다. 꽃과 나뭇잎이 떨어진 그 자리는 상실의 자리이기도 하지만 가장 먼저 새 생명이 움트면서 봄이 피어나는 자리입니다. 이 평범한 진리를 나무는 묵묵히 우리 곁에서 실천하며 살아왔지만 우둔한 사람이 깨닫는 데는 많은 세월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다시 저물어가는 한 해를 바라보면서 올해 나는 무엇을 꽃피웠고, 또 지녔던 것들을 다 떨어냈는가를 생각해 봅니다. 부자가 된다는 것보다 부자로 사는 것이 더 중요하겠지요. 많이 소유한 사람들 중에도 궁기가 서려서 빈곤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 적게 가졌지만 풍요롭게 사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가슴이 따뜻하고 인간미가 넘치는 사람들은 심성도 착하리라고 확신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가 생산했지만 자기 소유를 주장하지 않는 나무처럼 살아가는, 그래서 부자로 살아가는 축복이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우리 인생은 한 권의 책을 쓰는 것이라 합니다. 그런데 이 책의 특징은 지울 수도 없고, 마음에 안 든다고 찢어 낼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수정도 불가능합니다. 그러니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써내려간다는 것이 여간 어렵고 엄숙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진한 감동을 느끼게 하고, 오래 가슴 속에 남는 책들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책들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내가 잘못하고, 후회스럽고, 안타까운 일들만 기록됐다고 해서 포기하거나 좌절할 필요가 없는 것이겠지요. 오히려 앞으로 써나갈 내용들이 반전을 일으켜서 과거에 썼던 내용들이 귀한 역할들을 하게 될 것입니다.

저물어가는 한 해를 바라보는 지금은 우리 모두 훌훌 벗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하늘을 향해 마른 팔을 뻗는 나무 가지처럼 영원히 우리를 품에 안아주는 하늘을 향해 이제 겸손하고 진실된 손을 내미는 그런 시간인 것입니다. 우리 모두 부자로 삽시다.


김성수 / 성공회대 총장

'東西古今'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태극기로 지구를 덮자’는 40년 전 광고 카피   (0) 2013.01.10
최고의 유산!  (0) 2013.01.10
인간 조건  (0) 2013.01.08
내 성공의 75%는 목표설정!  (0) 2013.01.07
세대갈등, 젊은 세대에게 불리하다  (0) 2013.0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