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西古今

’태극기로 지구를 덮자’는 40년 전 광고 카피

뚜르(Tours) 2013. 1. 10. 23:11

1972년 새해, 각 신문의 1면을 장식한 광고가 있었다.
’태극기로 이 지구를 덮을 길은 없는가?’를 제목으로 한 5단짜리 광고였다.
"한국은 물량적인 경제 규모로는 세계의 상위를 점거할 수 없을지 모르나,
한국인의 명석한 두뇌는 질을 다루는 과학으로써 세계 정상까지 오를 수 있다는 것이 우리 신념입니다.
한 나라의 산업은 과학이 지배해야 하며, 과학과 기술은 자신의 것일 때 국가 이익에 공헌하게 될 것입니다.
1972년 새 아침, 이해에도 태극기를 앞세워 민족 기업으로서 과학 한국을 다시 한 번 세계만방에 상기시키고자 정진할 것입니다."


’지구 곳곳에 태극기를 휘날리겠다’고 한 제약사는 바로 종근당이었다.
외국에 100% 의존하던 항생제 의약품 원료를 생산한 첫 토종(土種) 제약사였다.
4년 전인 1968년에는 국내 최초로 FDA 승인을 받았고, 제약업계의 1호 연구소를 세우기도 했다.


40년 전의 광고 카피를 접할 때마다 늘 새롭다.
기자에게 1972년은 초등학교 4학년 시절로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 우리나라는 많은 국민이 가난에 찌들었고, 1인당 소득 3000달러에 농촌의 식량 문제도 해결 못하는 후진국이었다.
기술은 별 볼 일 없었고 산업이라 해야 식품·섬유·제당업에 국한됐을 때였는데도
세계를 향해 선전포고를 한 기업가 정신에 놀라움을 느낀다.


광고 문안에 담긴 혜안(慧眼)도 감동적이다.
’한국인의 명석한 두뇌’
’과학으로 세계 정상에 이를 수 있다’는 내용을 볼 때마다 힘이 불끈 솟는다.
1941년 설립된 종근당이 비록 세계 1위 제약사는 아닐지라도
여전히 국내 제약업계에서 대표적인 장수 기업으로 평가받는 것도 과학기술 기업을 지향한 정신이 큰 힘이 됐을 것이다.


태극기로 지구를 덮는 작업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다.
지난 6월 페루 출장길에 유명을 달리한 삼성물산과 수자원공사, 전문 감리사 기술 인력들을 떠올리면 마음이 아프다.
우리 토목 기술을 수출하기 위해 현지를 시찰하던 중 헬리콥터 추락으로 4000m 고지에 떨어진 그들은
우리의 기술과 열정을 수출하려다 비명에 간 산업 전사(戰士)들이다.


글로벌 전쟁터의 환경은 갈수록 열악해지고 있다.
경쟁 때문이다.
요즘 종합상사 직원들은 ’광부’ ’농부’를 자처한다.
"007가방에 세련된 양복을 걸치고 선진국을 활보하는 것은 옛날 얘기죠.
이젠 상사원 직업란에 ’태국 농부’ ’인도네시아 광부’라고 적어야 해요."(송치호 엘지상사 동남아 총괄 부사장)
인도네시아 밀림의 팜오일 농장, 베트남, 미얀마, 시베리아 동토(凍土) 등에서 옥수수 농장과 철광산, 오일필드에 목숨 내놓고 땀 흘리는 산업 전사는 수없이 많다.


기업에는 너무나 간단하고 명료한 생존·성장의 등식이 만들어져 있다.
’해외시장에서 인정받으면 살고, 국내에 안주하면 죽는다.’
삼성전자·현대자동차·현대중공업 등 국내 경제를 주도하는 대기업들의 주 무대는 해외다.
서비스업도 마찬가지다.
농심(라면·스낵), BBQ(치킨), 파리바게뜨와 뚜레쥬르(제빵), 이랜드(의류), 롯데마트(유통), 카페베네(커피 음료), 미스터피자(피자) 등 다양한 업종의 수많은 업체가 ’지구를 태극기로 덮겠다’고 나섰고 한국 경제를 견인하고 있다.


2012년의 말미다.
’어렵다’고 한숨짓지 말자.
’나만 고통받는다’며 원망하지 말자.
40년 전 이미 태극기로 세계를 뒤덮자고 소리쳤고, 이젠 글로벌 10대 경제 강국에 자리한 우리다.
올해는 유럽 재정 위기와 중국 내수 부진에 조바심 내며 보낸 1년이지만,
그래도 국내외의 산업 전사들이 있었기에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국내외 산업 전사들에게 진심으로 박수를 보낸다.



이광회 / 조선일보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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