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nus' Opinion

[만물상] 1억원짜리 강연

뚜르(Tours) 2013. 2. 23. 09:57

2009년 2월 이화여대 강당에 학생 2000여명이 모였다. 연사가 나오기도 전에 강당이 후끈 달았다. 무대 왼쪽에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손을 흔들며 나타났다. "서울 미 대사관에 이화여대 출신이 50명이나 일하고 있다"며 말머리를 풀었다. "21세기 초를 젊은 여성으로 산다는 게 얼마나 멋진 일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예순둘인데도 빨강 재킷과 검정 바지 차림이 강렬했다. "인생은 사랑하고 사랑받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나머지는 모두 배경음악일 뿐이에요." 강당이 함성에 묻혔다.

▶이제 국무장관 자리를 떠난 힐러리 클린턴이 인기 강사로 나설 모양이다. 미국에서 가장 큰 강연 기획사 해리워커가 힐러리와 전속 계약을 맺었다. 해리워커는 남편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도 계약한 회사여서 부부가 같은 에이전시 소속이 됐다. 힐러리는 "대선에 나설 생각은 없다. 얼마간 저술과 강연에 몰두하겠다"고 했다. 힐러리는 한 차례 강연료가 10만달러(약 1억800만원)를 넘는다. 장관 연봉이 18만달러였으니 강연 두 번이면 한 해 벌이를 앞선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는 강연료가 최고로 셌다. 2009년 필리핀에서 강연한 뒤 시간당 36만4000파운드(약 6억원)를 벌었다. 분당 1000만원꼴이다. 민간 기업인으로는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가 2007년 '부자 박람회'에서 컨설팅 회사 러닝 아넥스로부터 시간당 강연료 150만달러(약 16억원)를 받았다. 강연료에 덧붙여 주최 측 행사에 와줬다는 초청료의 뜻도 있다. 입이 떡 벌어질 액수다.

▶국내에도 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 하는 강연이 수요·공급에 따라 움직이는 시장(市場)으로 틀을 잡았다. 연사를 연예인처럼 관리하는 전문 업체도 많다. 특급 강사로 소문이 나면 '골든 마우스(mouth)'라고 부른다. 크게는 강연 한 차례에 300만~500만원 받는다. 보통은 100만원 안팎이다. 교수·문인·연구원·전문강사가 주로 연단에 선다. 어느 시인은 "전국 지자체에 안 가본 곳이 없을 만큼 바쁘다"고 했다.

▶공직을 떠난 뒤 대중 강연으로 1억원을 버는 것과 로펌에 들어가 한 달에 1억원을 버는 것은 조금 다를 것 같다. 전관예우로 받는 큰돈이라면 그 때문에 송사에서 억울한 사람도 있을 것 같아 개운치 않다. 빌 클린턴은 한 번 강연에 75만달러(약 8억원)를 받은 적도 있지만 대부분 에이즈 퇴치 기부금으로 냈다. 공직에 있었던 덕에 얻은 '말(言) 값'을 공공에 되돌려주려는 뜻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