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치기와 무질서, 떠드는 아이들… 우리가 '버럭'하는 많은 일들,
대부분 섬세한 시스템과 부지런한 관리로 해결될 수 있는데 왜 손 놓고 있나
- 선우 정·사회부 차장
동네 버스정류장 바로 앞에 벤츠 차량이 멈췄다. 한 남성이 내리더니 문을 잠그고 바쁜 척하면서 걸어간다. 버스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멀뚱멀뚱 쳐다볼 뿐이었다. 그때 정류장으로 다가오던 할아버지가 욱했다. "이봐요! 여기 차를 세우면 사람들이 어떻게 버스를 타라고!" 놀란 운전자가 발길을 돌려 차를 뺐다. 할아버지는 유명한 시인이었다. '하늘을 깨물었더니 비가 내리더라….' 마음이 하늘처럼 맑으니 세상 일에 더 엄격한 듯했다.
몇 년 후 정류장 풍경에 변화가 생겼다. 인근 신호등 위에 불법 주정차를 단속하는 CCTV가 설치됐다. 정류장에 주차하는 운전자가 줄었다. 누군가 모르고 주차하면 터줏대감 노점상이 놀리듯 말한다. "쪼~기, 카메라 있는데요." 남들 불편에 무감각한 사람일수록 자기 돈 나가는 데엔 민감한 법이다. 다들 허둥지둥 차를 뺀다. 시스템이 시인의 욱하는 수고를 대신한 것이다.
옷을 파는 유니클로 계산대에서 본 일이다. 한 줄로 기다리는데 출구에서 들어온 부부가 새치기했다. "여기 기다리는 사람이 있잖아요" 하고 어떤 노인이 소리쳤다. 놀란 부부는 자리를 비켰다. 나 몰라라 계산을 하려던 직원은 그저 빙긋이 웃는다. 그러자 노인이 직원에게 말했다. "방금 당신에게 소리친 거요!"
손님은 실수할 수 있다. 한 줄 서기를 요구하면서 실수를 방치하는 직원이 문제 아닌가. 유니클로는 의류만이 아니라 서비스까지 일본 시스템을 한국에 이식했다. 일본에선 사소한 새치기라도 손님에게 내맡기는 경우는 없다. 유니클로는 이식한 시스템을 손님에게 따르도록 했지만, 시스템 관리법을 직원에게 교육하지 않은 모양이다.
예전에 재해 취재를 갔을 때다. 구호물자를 타려는 사람들로 현장은 북새통이 됐다. 배분 방식을 정하지 않고 물자부터 풀었기 때문이다. 공무원은 팔짱을 끼고 구경만 했다. 이번에도 할아버지가 나섰다. "당신, 뭐 하는 사람이야?" 버럭 화를 내다가 흥분해 멱살까지 잡았다. 그때야 공권력이 줄 세우고 공정하게 배분했다. 누군가 말했다. "이놈의 세상은 화를 내야 움직여."
일본 사람들은 화를 잘 참는다고 한다. 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도쿄 시부야란 유흥가는 밤이면 취객들로 아수라장처럼 변하던 곳이다. 이런 동네가 7~8년 전 경광봉을 든 동네 할아버지 몇 명이 버럭버럭 화를 내고 다니면서 달라졌다. '간코 오야지(완고한 아버지)'란 별명으로 할아버지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불량 청춘들이 발길을 끊은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화를 잘 낸다고 한다. 하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다. 꼬리 물기로 자동차가 엉겨붙어도, 횡단보도 중간까지 자동차가 머리를 들이밀어도, 식당에서 아이들이 놀이터인 양 뛰어놀아도, 이웃집 멍멍이 것으로 추정되는 변이 내 집 앞에 있어도, 이런 난장판을 정리해야 할 사람들이 먼 산만 바라보고 있어도, '그러려니' 참는 인내왕(王)들 아닌가. 신선만 산다는 히말라야 노동자까지 한국만 오면 욱해서 데모하는 환경이라면, 그게 국민성 탓일까. 오죽하면 '참으면 암에 걸린다'는 말까지 나올까.
층간 소음 때문에 방화·살인까지 하는 싸이코들을 두둔하는 것이 아니다. 독재에 대한 항거처럼 무슨 거대악을 향해 분노하자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하루에도 여러 번 욱하고 버럭댈 수밖에 없는 일은 대부분 의식과 시스템을 약간 고치고, 책임자가 부지런히 움직이면 해결되는 사소한 것들 아닌가. 선진국 사람들이 욱하지 않는 것은 마음이 넓어서가 아니다. 욱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시스템을 섬세하게 만들고 주변을 세심하게 관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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