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미국 대선 후보를 지낸 77세의 야당 의원이 전쟁터로 혈혈단신 들어갔다.
내전으로 3년째 8만 명이 죽어나가는 동안, 정의(正義)를 외치는 국제사회의 어느 고위인사 한 명 발 들이지 않은 곳이다. 정치 인생 30여 년간 국방·안보에 천착해온 그는 "열세인 이 나라 반군(叛軍)을 무장시켜 독재정권을 무너뜨려야 한다"며 현지에 잠입해 반군의 육성을 직접 들었다.
지난달 27일 시리아에 다녀온 존 매케인 미국 상원의원 얘기다.
매케인이 헤드라인을 만들자 백악관이 곤혹스러워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은 시리아에 얽혀들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미국에서 "알아사드 대통령이 시리아 국민의 자유를 위해 자진사퇴해야 한다" "화학무기 사용이란 금지선을 넘으면 좌시하지 않겠다"는 수사(修辭)는 넘쳐났지만 사실상 립서비스였다.
미국은 러시아와 이란, 테러 집단 헤즈볼라가 아사드 정권에 민간인 살상 무기와 인력을 공수하는 것을 알면서도 나서지 못했다.
중동에서의 전쟁은 이전 정권에서 너무 큰 대가를 치렀다.
이슬람 내 종파 분쟁에 미국이 끼어들 경우 결과를 통제할 수 없다는 부담도 컸다.
야당도 학계도 언론도 시리아 군사 개입을 섣불리 입에 올리지 못했다.
그러나 원로 정치인의 말에 ’현장의 힘’이 실리면서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워싱턴포스트가 최근 격문에 가까운 기사로 오바마 정권을 성토했다.
"인권(人權)을 떠받들던 진보 매파가 왜 유독 시리아엔 침묵하느냐"며
"이는 북한 같은 전 세계 압제 정권들에 ’미국은 손을 뗐다’는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고 했다.
침묵하던 뉴욕타임스도 "오바마가 더 이상 미적대면 안 된다"고 가세했다.
위기를 감지한 외교안보팀은 이번 주 반군 무기 지원에 무게중심을 두고 난상토론에 돌입하기로 했다.
매케인은 29세에 베트남전에 참전했다가 공산당에 포로로 붙잡혀 5년 반 동안 고문과 독방 감금을 당했다.
당시 해군 제독인 아버지 잭 매케인이 미 태평양 사령관에 부임하자
베트콩이 화해 제스처로 조기 석방을 제안했지만,
아들은 "먼저 들어온 사람이 먼저 나간다"는 군(軍) 수칙을 내세워 동료부터 나가게 했다.
미 반전(反戰) 평화단체와의 면담 이벤트도 공산당 선전에 이용될까봐 거부했다.
석방될 땐 몸무게가 20㎏이 줄고 머리가 하얗게 세 있었다.
그는 정계 입문 뒤엔 보수 공화당에서 진보적 소신을 펼쳐 ’이단자’로 불렸다.
현직 대통령의 주가 폭락으로 승률이 희박한 대선에 여당 후보로 나섰다 진 뒤 대선판에서 깨끗이 물러났다.
많은 미국인은 현재 매케인을 ’미국의 양심’이라 부르며 진짜 ’정치 거물’로 대우한다.
한국에서 집권에 실패한 전직 대선 후보가 그처럼 신념과 전문성을 지키며 계속 나라를 위해 일하는 경우는 드물다.
우리 정치에서 ’거물’이란 이름은
국가의 무게를 무겁게 알고 정책 철학을 차분히 구현해온 고수(高手)보단,
뜬구름 같은 말과 몰려드는 사람으로 포장된 초보에게 덥석 주어지곤 한다.
급조된 거물들은 대선에서 패하면 예외 없이 참혹하게 잊혔다.
인기와 권력에 초연한 매케인 같은 거인이 아쉽다.
정시행 / 조선일보 기자
'東西古今'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멈춤이 가장 어렵다 (0) | 2013.06.26 |
---|---|
Think Different ! (0) | 2013.06.24 |
산행길과 인생길 (0) | 2013.06.20 |
니메라의 독백 (0) | 2013.06.19 |
돈은 있는데 행복하지 않다면… (0) | 2013.06.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