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연희동은 골목마다 한 집 건너 덩굴장미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빨간 원색이 내뿜는 정열의 열기가 요 며칠 갑자기 뜨거워진 날씨 못지않게 화끈하다.
그런데 동네 사람들은 대개 이 꽃을 덩굴장미가 아니라 찔레꽃이라 부른다.
하지만 본디 찔레꽃은 붉은색이 아니라 흰색이다.
그렇지만 1942년 가수 백난아가 불렀고 지금도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이라면 심심찮게 흥얼거리는 노래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 나라 내 고향"에도 찔레꽃은 붉은색이다.
아마 작사가가 붉은 덩굴장미를 찔레꽃으로 잘못 알고 가사를 지은 모양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리 틀린 말도 아니다.
우리가 기르고 있는 덩굴장미는 대개 찔레를 대목으로 장미를 접목한 것이니 말이다.
아프리카 초원의 얼룩말을 보며 사람들은 흔히 흰 털가죽에 검은 줄무늬가 나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 정반대이다.
동물에게는 검은색이 기본이다.
멜라닌 색소가 정상적으로 발현되면 검은색을 띤다.
얼룩말의 문양은 사실 군데군데 멜라닌 색소가 제대로 발현되지 않아 흰 줄무늬가 생겨 그리된 것이다.
젊었을 때에는 윤기가 흐르던 검은 머리에 세월이 흐르면서 희끗희끗 흰머리가 생기듯이.
단풍의 색에는 기본적으로 노랑과 빨강 두 종류가 있다.
가을로 접어들어 기온이 떨어지면 단풍나무는 새롭게 안토시아닌 색소가 만들어지며 붉은색을 띤다.
은행나무는 좀 다르다.
이미 봄부터 갖고 있던 카로틴계 색소들이 기온이 떨어져 엽록소가 파괴되기 시작하면 드디어 노란 본연의 색을 나타내는 것이다.
여름에는 엽록소의 녹색 위용에 가려 존재감도 없이 지내다가 가을이 돼야 비로소 본색을 드러낸다.
요즘 우리 사회에는 지위가 높아지면서 슬그머니 자신의 본색을 드러내는 추태들이 속속 보도되고 있다.
물체의 색이란 본디 태양 등의 광원에서 물체의 표면에 다다른 빛 가운데 물체가 흡수하지 않고 반사한 빛을 우리 눈이 색으로 감지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본인이 받아들이지 않고 반사한 색을 과연 본색이라 할 수 있을까?
추태와 더불어 드러나는 색은 본색이 아니라고 믿고 싶다.
그저 권력이나 재력 같은 외부 광원에 눈이 부셔 본의 아니게 허영의 색을 반사한 것이라 믿고 싶다.
그게 만일 본색이라면 삶이 너무 불쌍하고 허무하다.
최재천 /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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